봄이 되면 비만클리닉을 찾아오는 여성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바캉스를 대비해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그분들은 여름에 당당하게 민소매와 미니스커트, 비키니를 입고 싶어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무엇이든 당당하게 입어도 될 몸을 갖은 분들도 살 때문에 몸
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기 부끄럽다고 합니다.
 「밀로의 비너스를 아시나요?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를 조각했던 조각가는 최대한 아름답게 비너스를 표현하고자 애쓰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본 비너스는 어떻습니까? 비너스는 기원전 2세기경,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200여 년 
전 미의 기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비너스의 몸매를 가졌으면서도 수영복 입기가 부끄러워서 신음하고 있다면 이 비너스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문제가 아니라 말라깽이를 예쁘게 보는 지금 이 시대가 문제라고 외치세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의 비너스역시 풍만한 몸매의 여성입니다. 조선시대 미인도에 나오는 미인도 깡마른체형이 아닙니다. 이 그림들은 평범한 여성의 몸매와 이상적인 여성의 몸매에 대한 편차가 크지 않았던 시절에 그려진 그림들입니다. 그 시대에는 그 그림들을 보며 자괴감에 빠진 여성들이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2000년 이상 불변하던 여성미의 기준이 4, 50년 만에 이렇게 확 바뀐 것은 대중매체의 영향이 큽니다.
 여성의 체형 변천과 관련해서 영국의 의학 잡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ritish Medical Journal> 에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실렸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의과대학원의 마틴 보라섹 교수와 캐나다 요크 대학의 마리앤 피셔 교수는 <플레이보이Playboy>를 지난 1953년 창간호부터 200112월호까지 577이나 탐독하며 모델들의 체형 변천사를 연구했습니다. 연구 대상은 바스트, 웨스트, 힙의 사이즈였습니다. 연구 결과, 50년대에는 마릴린 먼로 스타일이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가슴은 크고,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 골반 부위가 옆으로 돌출된 모래시계 스타일 말입니다. 그런데 90년대가 되면서 폭 안기고 싶은 풍만한 육체를 가진 여성은 <플레이보이>에서 사라지게 됐습
니다. 그리고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여성들이 지면을 장식하기 시작했죠. 지난 반세기 동안 여성들의 체형이 진화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대중매
체가 리드하는 대로 미의 기준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여대생 10명 중 7~8명은 자신이 뚱뚱해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평범하고 현실적인 몸매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조작을 가한 기이한 몸매를 꿈꾸고 있습니다.
 일본의 여성 속옷 전문 업체에서 세계 12개 대도시의 20~40대 여성 1,720명을 대상으로 체형을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서울 여성들은 평균 키가 162.5㎝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반면 가슴과 엉덩이 둘레에 비해 허리둘레가 가는 X자형 몸매의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죠. 그렇다면 과연 한민족의 유전자 때문에 X자형 체형이 많은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이 결과의 이면에는 다이어트로 고생하는 한국 여성들의 신음소리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여성들은 아시아의 그 어떤 여성들보다 다이어트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기형적인 사회가 요구하는 기형적인 기준에 맞춰 애꿎은 몸을학대하며 살과 전쟁 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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