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은 폭식을 부른다


 식욕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본능입니다. 이 본능을 살 빼겠다는 집념으로 극도로 억누르다 보면 본능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굶기는 머지않아 폭식을 낳습니다. 마르고 싶다는 욕망과 생존 본능이 팽팽히 대립하다가 전자가 이길 때는 굶고, 후자가 이길 때는 폭식을 합니다.

 한번 식욕이 발동하면 먹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먹지 못하면 신경질과 짜증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요. 그러다가 일단 음식 앞에 앉으면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됩니다.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먹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출 수가 없을 정도죠. 심지어 숨쉬기 곤란할 정도로까지 먹고요. 다 먹고 난 뒤에는 이내 먹었던 것을 토해내야만 속이 시원한 상태를 흔히 폭식증이라고 합니다. 정신의학적 명칭으로는 신경성 폭식증(Bulimia Nervosa)이라고 합니다.
 신경성 폭식증은 과거에 굶기 다이어트를 했던 사람에게 흔히 나타납니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식욕을 이성적으로 꾹꾹 누르다보니 순식간에 터져 버리는 거죠. 용수철을 꽉 누르면 튕겨 나가는 것처럼 통제권 밖으로 튀어 나가 배부름과 배고픔을 조절하던 식욕중추가 제 기능을 잃어버립니다. 그럼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낼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런 폭식증은 정신을 황폐화시킵니다. 우울증부터 자살충동까지 일으키게 하고, 대인관계를 망가뜨려 사회 활동을 못하게 만드는 심각한 질환입니다. 이 질병 때문에 학교를 휴학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이혼 위기에 처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다이어트 노이로제에 걸린다


 비만 때문에 건강까지 위협받는 사람이라면 평균만 돼도 좋겠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몸을 가진 사람들이 말라 보이고 싶은 생각이 강해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정상적인 몸을 더 마르게 하려면 비정상적인 생활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운동을 해도 살이 빠지지 않습니다. 운동은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활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정상적인 사람이 운동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살이 빠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굶는 방법을 택하고 맙니다.
그러나 굶는다고 해서 살 빼는 목표가 제대로 성취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할 때는 정상적인 몸을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발동하기 때문입니다. 잘 안되니 신경질도 나고, 짜증도 나지요. 애당초 처음부터 잘못된 목표를 설정하고 어떻게든 굶어서라도 살을 빼려다 보니다이어트 노이로제에 걸리게 됩니다. 다이어트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은 종일 살 뺄 궁리만 하고, 어떤 음식을 대하든 칼로리만 계산하죠.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혼자만 마음껏 먹지 못하는 현실에 화가 납니다. 사소한 일 같지만 대인관계에서 식사는 중요한 일입니다. 함께 원활한 식사를 하며 어울리지 못하고, 매번 스트레스를 받으면 관계 장애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임신을 위협한다


 굶기를 지속하면 우리 몸은 이를 위기상황으로 인식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존입니다. 자식을 낳는 생존 따위는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여성들의 경우는 배란과 생리를 멈추는 일이 생깁니다.

 몇 해 전 찾아온 한 환자는 생리가 멈췄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이 환자는 시중에 떠도는 다이어트 식품 중 꽤 유명하다고 하는 H제품으로 다이어트를 했죠. 아침과 저녁 대신 가루로 된 H제품을 물에 타 먹었습니다. 점심은 대충 때웠고요. 나름대로 살이 찌지 않는 것을 골라먹겠다고 국수종류를 자주 먹었죠. 급기야 적게 먹기보다 차라리 안 먹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숟가락을 들면 이성을 잃고 머리가 백지장이 되는 자신을 익히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아무것도 안 먹는 것이 아니라 건강에 좋다는 가루라도 물에 타 먹으니 조금 안심을 하기도 했고요. 그녀는 급속하게 체중을 감량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머리숱이 적어졌습니다. 피부가 거칠어져 화장이 들떴습니다. 변비도 생겼죠. 무슨 일을 하든 쉽게 피곤해졌습니다. 앉았다 일어서면 현기증까지 일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이 빠지는데 이깟 어려움쯤이야 감수하리라고 다짐하면서 살 빠진 사실 자체를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급기야 매달 꼬박꼬박 하던 생리가 딱 멈추고 말았죠. 이쯤 되니 사태가 심각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습니다.

 ‘생리가 멈추면 임신도 안 된다는데…….
 덜컥 겁이 난 그녀는 다시 보통의 식사로 복귀했습니다. 그랬더니 체중이 빠졌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쑥쑥 늘어나더니 결국 이전보다 더 살이 찐 상태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허무하고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게다가 생리가 다시 시작될 기미도 보이지 않자 결국 허탈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저를 찾아왔습니다. 2개월간의 치료 끝에 생리는 다시 시작됐지만 다이어트 식품 사느라고 돈 버리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또 약값까지 들어갔으니 잘못된 다이어트의 대가를 톡톡히 치룬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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