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습니까? 예쁜 여자가 공부도 잘 하면 금상첨화, 못생긴 여자가 공부 잘 하면 독한 여자,과거는 용서할 수 있어도 못생긴 건 용서할 수 없다.
 참 속상한 얘기죠. 현대 여성들은 과거에 비해서 사회에 진출해 자신의 능
력을 펼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반면 또 다른 장벽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외모 장벽입니다. 여성은 자신에게 내재된 능력과 가치를 평가받기 전에 우선 외모에 대한 평가를 먼저 받습니다.

 이미 세상은 외모지상주의를 뜻하는 루키즘(Lookism)에 물들어 있습니다.요즘은 딸이 예쁘지 않으면 엄마가 딸의 손을 잡고 성형외과를 찾는답니다.그게 딸의 장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라나요.

 인종, 빈부, 권력, 성별, 학력, 나이 같은 것이 사회적인 불평등을 초래하는 요즘, 외모도 불평등을 초래하는 강력한 요인으로 부상했습니다. 한 광고기획사에서 13~43세의 우리나라 여성 200명을 대상으로 외모와 사회적 성공과의 관계에 대해 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68%는외모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습니다. 78%는외모를 가꾸는 것은 멋이 아니라 삶의 필수 요소라고 대답했죠. 73%는 자신이 평균보다 더 뚱뚱하다고 대답했습니다. 72%는 얼굴이 예쁜 여자보다 몸매가 좋은 여자가 더 부럽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여성의 10명 중 7명 이상은 자신이 뚱뚱하기 때문에 인생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키즘이 만연하는 데 있어서 일등공신은 단연 대중매체입니다. 대중매체가 세계를 하나의 단위로 촌락화하면서 동시에 세계의 문화를 동질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소위 잘 나가고, 지적이고, 전문직을 가진 여성들은 모두 예쁘고 날씬하죠. 반면, 못생기거나 뚱뚱한 사람은 주인공의 친구나 조연에 그치며 그나마도 한심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역할만 합니다.

 그러한 설정은 분명 허구이건만 현실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외모에 따른 편견을 갖게 됩니다.
 여성들은 드라마 속 늘씬한 미인을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못생기고 뚱뚱한편에 속하는 자신에 대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심지어는 죄책감까지 느끼
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세상은 여성들에게 예쁘고 날씬한 외모를 요구하고 있고, 여성들 스스로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외모는 필수 조건이라고생각합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여학생의 경우를 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학점도 우수하지만 막상 직장을 구하려고 할 때는 학점은 낮지만 날씬한 여학생들 앞에서 열등감을 느낍니다.
 요즘은 기왕이면 다홍치마가 아니라 우선 다홍치마입니다. 생활을 위해서 기본적인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듯 기본적인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외모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예쁜 여성들이 사회·경제적으로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 외모는 하나의 권력이 되어버렸죠.
 진료실에 찾아오는 분들 중에는 정말 건강이 걱정될 만큼 비만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을 빼지 않아도 될 만큼 훌륭한 몸을 가진 여성들도 살 빼겠다고 찾아오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그들은 비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결국 스스로를 비만이라 생각하며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비만클리닉을 찾아오곤 합니다.
 그들을 설득시키려고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에서 나옵니다. 사람의 마음을 끄는 진정한 매력은 쌍꺼풀 있는 큰 눈이나 오똑한 코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는 예쁜 표정과 인상에서 느껴지는 것입니다.라고 얘기합니다. 각종 의학적인 데이터도 들이대면서 이미 훌륭한 몸매니까 만족하며 살라고 하죠. 하지만 이런
말들은 그들에게 공허하게 들릴 뿐입니다. 날씬한 여성이 돼야 떳떳하게 살수 있다는 의식이 사회 안에 사라지지 않는 이상은 어쩔 수 없죠.


저는 올해로 벌써 서른입니다. 그런데 이 몸매로 어떻게 시집을 가죠?

주변에서 남자를 소개시켜 준다고 해도 제가 자신이 없어요. 이런 제가 남자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상상이 가시죠?

저를 좋아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벌써 머릿속에 꽉 차 있다구요. 물론 저도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외모가
전부는 아니라고 몇 번이고 생각을 다짐하죠. 그렇지만 다른 거 뭐 내세울 게 있어야 말이죠.

요즘은 주부들도 미시족이라고 해, 아가씨들처럼 반바지에 민소매만 입고 애기 안고 다니는데,

저는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아줌마 몸이라구요.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 정말 신경질 나요.

얼굴은 왜 그렇게 보름달처럼 잘 붓는지. 그런 모습을 보면 어디에도 나가고 싶지 않아요.

회사에 가면 복도에서 커피 마시는 남자들을 지나치는 게 제일 싫어요.

제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요. 에휴, 그들이 절 보기나 하겠어요?

지만 뒷모습을 보고 실실 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 30세, 증권회사 근무)



덩치 크다는 소리, 정말 지긋지긋해요. 왜 키는 조그맣고 통통한 애들 있잖아요,

그런 애들은 귀엽기라도 하죠. 저는 왜 키까지 커가지고…….

전 버스 뒷좌석으로는 절대 안 가요. 자리가 나면 ‘앉아도 되려나?’ 되려 눈치 보여요.

지하철 타면 앞자리가 비어 있어도 좁아 보이면 아예 다른 칸으로 가버려요.

끼어 앉으면 정말 창피하니까요.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삐’ 소리 나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아세요?

애들이 킥킥 웃으면서 “야, 너 내려.” 하면 저도 웃으면서 “뭐야” 하고 태연하게 반응하지만

속으로 얼마나 열이 나는지 아세요? 살찐 게 뭐 죄도 아닌데 부끄럽기까지 해요.

왜 이렇게 늘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죠?

선생님, 제 덩치만한 여자애들이 표정 밝은 거 보셨어요? 다 주눅 들어서 살아간다고요.

저도 그런 말은할 수 있습니다. 덩치 큰 거 가지고 주눅 들 필요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래요. 남들이 저를 미련하고 게으르다고 여긴다는 생각……. 이런 생각들이 저를 주눅 들게 만들어요.

가끔씩 제가 날렵하게 행동하면, 사람들이 그래요. “오, 날렵하네?” 그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그동안 저를 둔한 여자로 알아왔다는 뜻이라고요.


(김○○, 21세, 대학생)



비만클리닉을 찾은 여성들은 대부분 이처럼 자신을 비하하고 책망합니다. 살 때문에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자기주장도 하지 못하죠. 상사에게 뭔가 제안할 때, 자기 생각이 분명히 나은 점이 있는데도 자기보다 좀 예쁘고 날씬한 사람이 다른 주장을 펼치면 말없이 수긍하기도 하죠. 아니면 상사가 예쁘고 날씬한 직원의 주장을 더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거절당하고 밀리다 보면 마음속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납니다. 남들처럼 책도 읽고 재미있는 취미 생활도 하고 싶지만 온통 다이어트에 집중하느라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됩니다. 늘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 뭘 먹어야 하나, 뭘 먹지 말아야 하나, 온통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다이어트에 쏟아 부은 돈도 어마어마합니다. 소중한 젊은 날을 다이어트로 물들이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럽고 유치하죠. 하지만 살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자신도 미칠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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