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역사여행이야기>
11. 청와대의 생각과 운현궁의 결정
2016년.
여러 이익집단과 수많은 개별 사람이 모인 국가에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고, 최대한의 공리를 생각하며 국가의 좌표를 설정할 때 마지막에는 최종 한사람의 결정이 필요하다.
2016년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 대한민국의 마지막 결정권자는 누구일까?
흔히 ‘청와대의 생각’ 이니 ‘청와대의 결정’으로 표현되는
바로 대통령이라는 자리다.
150년 전 우리나라의 국호는 조선이었다.
당시 조선에서 최고의사 결정권자는 누구였을까?
당시엔 대통령이 없었고, 왕국체계로써 국왕이 존재했다. 그래서 국왕이 당연 최고결정권자로서 ‘청와대의 생각’처럼 ‘청와대’자리에, 국왕이 살았던 궁궐인 - 창덕궁을 붙여본다.
창덕궁의 생각?
창덕궁의 결정?
그런데...
창덕궁이 아니란다.
운현궁?
1863년 조선의 26대왕 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그의 아버지가 정치 전면에 포진한다.
그 유명한 흥선대원군, 그가 살았던 곳이 바로 운현궁이다.
‘궁’은 원래 궁궐에 붙은 용어이지만, 왕의 아들이 아니면서 왕이 된 이가 어렸을 적 살았던 집도 ‘ㅇㅇ궁’이라고 부른다.
흥선대원군이 그의 아들이 왕이 되기 전에 함께 살았던 집이 바로 운현궁이었고, 지금의 <청와대>의 결정에 버금가는 <운현궁>의 결정은 조선을 들었다놨다 할 정도의 힘이 있었다.
운현궁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결정을 했을까?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는 서구 열강들과 일본 청나라 강국틈에서 정치하는 이들은 자기 배만을 채우고, 외척들은 허수아비 왕을 세워놓고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탐하는 그 때...
운현궁에서는 일단은 바람앞의 등불을 지키려 바람 - 외세를 막았다. 철저히.
또한 외척들의 힘을 없애고, 양반집단의 특권을 줄여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려 했다.
그리고 왕권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
권위는 어떻게 하면 세울 수 있을까?
불에 타 270년간 폐허로 남겨진 경복궁을 다시 세운다.
완공 즈음에 화재, 다시 재건하며 무리수를 많이 뒀다.
운현궁의 생각과 결정은 10년간 강하게 작용했고, 이후 정권 다툼기에 간헐적으로 등장하지만, 그 소리는 미미했다.
운현궁에 가면 흥선대원군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 몇 십만년 전이니 몇 만년 전이니 몇 천년 전이 아닌, 백오십년 전이니 아직 그의 체취가 남아있을 만도 한다.
체취는 못찾을런지도 모르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다.
역사여행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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