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행 역사여행 이야기 >


5. 숭례문


서울 용산에서 택시를 타고 “숭례문이요.” 라고 말했더니, 기사가 “숭례문요?” 라고 되묻는다. 순간 서울에 올라온 촌놈은 당황스럽다. 다르게 말해야 하나?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아. 남대문요.” 라고 기사가 스스로 정리한다. 


숭례문?

남대문?

애는 왜 이름이 두 개일까?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집단은 새왕조의 터전이 될 궁궐터로 경복궁 자리를 정한다. 그리고 궁을 중심으로 좌우에 종묘 사직을 두고, 도성을 둘러쌓은 성곽에 4대문과 4소문을 설치한다. 동서남북에 각각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북대문이 있고, 네 방위 사이로 4소문(小門)이 있다. 

그런데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이런 이름은 방위만 나타낼 뿐 ‘정신’이 없다. ‘하면 된다’라는 글귀를 책상에 써붙이고 공부하는 것과 그냥 무작정 공부하는 것은 마음자세부터 달라진다. 한양 도성을 출입하는 동서남북 문에 유교 사회를 표방한 나라답게 가장 소중한 가치를 담는다. 


음양오행을 세상 구성의 기본원리로 보는 이론이 있다. 

오색빛깔에서 ‘오색’은 세상의 모든 색을, 오곡백과에서 ‘오곡’은 모든 곡식을, ‘오장’육부에서 오장은 우리 몸 장기를, 월화수목금의 ‘오행’은 세상 질서를, 그리고 ‘오상(五常)’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항상 지켜야 할 다섯 덕목을 말한다. -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오상에서 가운데 예(禮)를 따와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로 숭례문(崇禮門)이라고 명명했다. 남대문을 통과하면서 문앞에 커다랗게 써붙인 ‘숭례문’ 글귀를 읽고 ‘예’에 대해 -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숭례문에는 꺼리가 많다. 

세로로 써 있는 현판글씨, 다른 대문은 가로 글씨인데 여기는 왜?

글씨는 누가 썼을까? 세종대왕 큰형인 양녕대군인줄 알았는데, 조선중간 중간 다른 이름들이 불쑥 끼어든다. 

국보 1호. 일제강점기에 자기네들 편의와 자기네들 상징(임진왜란때 일본 선봉군이 이 문을 통해 한양으로 진격했다)으로 1호로 삼았다는 얘기도 있고.

최근에는 화재로 전소되고 재건축되어 있어 이또한 답사 얘기가 된다. 


600년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숭례문은 21세기 빌딩숲속에 갖혀 있지만 전혀 기세에 눌리지 않는다.  

한양 이남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을 갖고 이 대문을 통과했을까? 

그리고 그 긴 시간이 지금 나와 연결되어 있고 난 또 여기에 이렇게 서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사연들을 이 작은 머리로 상상이나 할 수 있겠냐만, 그래도 현판의 글씨대로 숭례문에서 ‘예(禮)’ 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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