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행 역사여행 이야기 >
1. 동학 그리고 공주 우금치
공주의 우금치.
내가 십여년 동안 답사 때 쓰는 모자가 있다. 그 모자에는 "2001년 우금치예술제"라는 글이 인쇄되어 있다. 그 모자가 내게로 온 이후 그 모자를 애용하였고 난 항상 우금치를 생각하며 답사를 떠난다. 그 모자로 인해...
어린이와 학부모 답사팀을 데리고 공주를 여러 번 갔지만 함께 우금치는 잘 안간다. 손님들은 공주 속 백제를 원하닌까...
공주 우금치.
거기엔 조선말 동학 농민군 함성이 있고, 또 하나 덧붙여야할 혁명.
동학농민혁명 처럼 "동학+농민+혁명?" 으로 이름짓기에 학계논란은 많다.
동학(東學)은 조선말 당시 서학(西學)에 대항하고자 우리 사상(종교)으로 경상도 경주의 최제우가 창시한 것이다. 지금은 천도교라는 명맥으로 유지되고 있다.
난 동학 사상을 좋아한다. 특히 인내천(人乃天) -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는 말을.
믿어서 천당갈 게 아니고, 빌어서 극락갈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하느님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
사람이 곧 하늘이다. 내 앞에 마주 선 네가 하늘이고, 너 또한 나를 하늘로 보아주는 거다. 하느님(하나님이 아니니 여럿 있어도 되겠지)이 저기 거리에 걸어다니며, 하느님이 마트에서 계산을 해주고, 하느님이 오늘 강의를 하고, 하느님이 운전해주신 버스를 타고 난 집에 회사에 오고간다.
모두가 하느님이다.
그래서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 내마음이 곧 네마음' 이다.
동학에서는 최제우 다음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라는 분이 있다.
이 분은 화전민출신으로 일자무식이었다. 어느날 동학의 신도 집에 머물게 되었다. 베짜는 소리가 들리며 그 집주인이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다’고 말하자 ‘하느님이 베를 짠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조선말이 되면 가장 핍박받는 이들은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베틀에 앉아있는 이름없는 며느리가 바로 하느님인 것이다.
참고로 동학의 3대교주는 손병희 선생이고 그 손병희의 사위가 소파 방정환이다. 방정환의 어린이 날 또한 동학에서 비롯됨이다. 어린이를 어린이라고 부르기 전에는 따로 명칭이 없었다. 그냥 아새끼 정도...
동학은 당시 봉건사상을 척결하는 근대시민의식이었다.
조선말기.
관료체계와 관리들은 썩을대로 썩어가고 있었다. 최근 외환위기가 와도 돈벌 이들은 버는 것처럼 농민은 죽어나가고.
외세는 조선을 못먹어서 안달이지만 그 와중에 자기 몫을 챙기는 이들이 있었다.
그 중.
전라도 고부(지금은 정읍안에 있는 작은 면이지만, 조선시대엔 '군'이다) 군수 조병갑이 있었다. 저수지를 막아놓고 물세를 징수했다. 그것까지 가기 전에 갖은 수탈을 일삼았겠지. 농민들이 들고 일어선다. 집단화된 농민들이 들고 일어서기 위해선 구심점이 필요하다. 거기에 한문선생(서당훈장) 전봉준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농민들의 사상을 뒷받침 해주는 -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은 동학(물론 당시의 서학인 천주교에서도 갖고 있는 생각)에서 가져온 것이다. 고부관아를 습격해 탐관오리를 처리한다. 조병갑은 도망갔다.
이어 중앙에서 실사가 나왔다. 그리고 처리를 해주기로 했다. 헌데 안핵사라는 이름으로 파견나온 이용태라는 놈은 농민들을 잡아다 죄를 씌웠다. 신분질서의 유지가 양반들의 살 길 인데 그걸 반대하다니... 감히.
농민들이 다시 일어난다. 이번엔 관찰사가 있는 전주까지 점령한다. 도청소재지가 농민들 손에 들어간 것이다. 관에서는 농민군과 <전주화약>을 맺고 개혁안을 실행하기로 동의한다. 농번기도 되고 중앙에서 약속했으니 농민들은 다시 해산을 하고 이때 집강소에서 지방자치를 실시한다.
그리고 농민군의 위협을 받은 관에서는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고 일본또한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대가 들어온다.
일본과 청나라의 일전에 일본이 이기고 일본은 조정을 간섭하며 개혁을 하려들고...
농민군은 다시 분개하여 일어난다.
반봉건, 반외세. 척양척왜 보국안민... 이번엔 충청도까지 진격이다. 당시 충청도의 도청소재지는 공주에 있었다. 공주로 들어가는 길목 - 우금치를 넘으면 농민군의 함성이 한반도를 삼킬것이다.
십만 농민군이다.
죽창, 낫, 괭이 등 농기구를 든 농민군.
최신식 무기를 든 일본군 그리고 관군.
농민군은 우금치에서 거의 전멸한다. 그리고 피신했던 전봉준은 순창에서 부하의 밀고로 잡히고 농민군의 함성은 간헐적으로 들릴뿐 조직의 힘은 없어지고 만다.
그 자리가 바로 우금치다.
우금치 혁명 기념탑을 박정희가 세웠다. 독립군을 잡으러 다닐 일본군 장교출신이 일본군에게 목숨을 빼앗긴 농민군을 위로한다고 위령탑을 세웠다.
‘네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것일까.
백이십년 전.
바로 여기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시대개혁을 요구하며 목숨을 바쳤고
일본군의 총탄에 쓰러져간 바로 이 자리. 여기에 난 오늘 이렇게 서있다.
답사는
그 공간(空間)에서
옛 시간(時間)을 더듬는
인간(人間)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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