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엔 정자가 많다. 

정자와 함께 국문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시가문학의 가사.

담양엔 '한국가사문학관'이라고

번듯한 건물도 들어서 있다. 


조선중기 가사문학.  

가사가 뭘까?


노래가사의 가사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기 전까지

우리는 말과 글이 달랐다. 


한문은 글자수가 압축되는 묘미는 있지만,

우리말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아버지라고 말은 하면서도,

아버지라고 쓸 수는 없었다.

대신 ‘父’라고 한글자로 썼다. 


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슬픔.


이 나라의 모든 이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쓸 수 없는 아픔이 있었다. 


우리말을 한문으로 표기하는 아픔과 더불어

다시 한문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쉽지 않는 과정이었다. 

한문 소리만 듣고는 저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말로 '부'

이 소리를 듣고 무슨 생각을 할까?

不 夫 婦 父 富 復 ... 

이거 말고도 '부'라는 음을 가진 한자어는 많다. 

우리 생각을 한시에 집어넣으려면, 한자라는 틀을 통과해야 하고,

우리생각이 바로 시로 나타나지는 않게 되어

쓰기도 어렵거니와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말의 시를 썼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허리를 잘라내어

    춘풍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시는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황진이의 시조다.  

우리말로 생각을 참 잘나타냈다.

3글자 4글자 반복되며 우리말의 음률도 살아난다.  


헌데... 

세줄로 끝내려하니

내 생각을 다 못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3글자 4글자 반복해서 하고 싶은 말을 쭉 이어간다.

세줄 네줄 다섯 여섯 계속. 


맨처음으로 인정받는 것이 정극인의 <상춘곡>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말 가사를

가장 잘 풀어쓴 이가 송강 정철이다.   


송강 정철이 열여섯살부터 담양에서 살았고  

거의 폐족수준 가문이 다시 빛을 보게 되는 것이

무등산아래에서 광산김씨 집안에

장가들어 좋은 스승 만나 공부하고  

과거에도 장원급제하게 된다.    


승승장구하다가 정권 주도권 싸움에 밀리면 담양으로 내려왔다. 

담양엔 정철의 흔적이 곳곳에 가사문학과 함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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