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대가야 순장왕릉
대가야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고령에 가면 대가야 무덤들이 있다.
언덕위에 박혀진 700 여개의 반원.
그 무덤에 일련번호를 매겼다.
700여 개의 무덤 주인중엔 왕도 있었을 것이다.
왕이 아니래도 누군가 묻혔으니 무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태어나 자라고 생각하며 결혼도 하고 갈등도 하며 두려움에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한 인간의 삶.
이름은 잊혀진 채 번호로 불려진다.
열 개를 발굴했었고, 현재 한 개가 발굴 진행중이다.
그 중 44호분.
대단한 발견이 있었다.
발견은 있었던 것이 남겨져 다시 보여지는 일이다.
40여명이 함께 묻혀있다.
무덤 가운데 가장 큰 돌 관을 기준으로 차곡 차곡 동심원을 그리며 묻힌 흔적이다. 몇 곳에서는 유골도 수습되어 나이 유추도 가능하다. 8살 어린이부터 50대까지.
순장이다.
순장(殉葬)의 순은 따라죽을 순(殉)이다.
순장임이 증명되려면 세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한다.
1. 동시성 - 여럿이 동시에 함께 묻힌 것이다.
2. 강제성 - 타살의 흔적이 발견된다.
3. 계급성 - 각각의 관의 규모와 부장품의 품격이 다르다.
모시던(계급) 사람이 죽으면
묻힐 때 함께(동시)
죽어(강제) 같은 무덤에 묻혔다. - 따라 죽지 않으면, 따라 죽였을 것이다.
지배자가 죽어 묻히는데 왜 주위 사람들까지 함께 묻혀야 했을까?
왜?
권력자는 살아서 아랫사람을 부리고 죽어서도 그 생활은 지속되어야 하기에 주위 사람을 함께 묻었다. 죽음이후의 삶(죽음이후의 삶이라는 말자체가 모순) 또한 지금처럼 지속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당연시 했다.
어쩌면 순장대상에 뽑힌 걸 영광스럽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얼마되지 않았다. 불과 1500년전 이야기이다.
앉아서 역사연표 그리면 천년은 잣대 눈금 한두줄 차이다.
삼국시대 초기엔 한반도 북쪽 끝에서부터 이런 순장 무덤이 발굴된다.
유행이었다.
권력이 많을수록 많은 사람을 함께 묻는.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내세 개념이었을 것이다.
2천년 후 지금 우리는 순장 무덤의 폭력성을 보면서
내세에 대한 그들의 무지와 지금 사람들의 현명함을 은근 자랑스러워할런지 모르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금 우리가 종교로 혹은 철학으로 개념짓는 죽음 후에 대한 생각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로 다수를 최면에 거는 사상들이
역시 천오백년후엔 '사기'로 ‘웃음거리’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는...
살아있는 인간주위에는.
보이지 않는 힘을 빌려 인간을 옭아매는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사상들이 있다.
일련의 활동들이 인간을 향하지 않고 돈을 향하거나 권력자의 욕심을 향한다면 언젠가는 이또한 우스개꺼리.
그리고 '순장' 무덤앞에서 느끼게 되는 인간 폭력의 황당함까지도 연결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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