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행 역사여행 이야기 >
4. 청와대
사람에게 이름이 있듯 건물에도 고유이름이 있다. 건물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질까? 가장 흔하게는 그 소재지와 하는 일을 들어 그 건물의 이름을 짓는다. 서울특별시청, 국회의사당, 시립무등도서관... 이런 건물들은 어디쯤에 있을 것인지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관공서 건물 이름은 어디에 있는 무슨 성격의 건물이라는걸 보여주며 이름을 짓고, ㅇㅇ쇼핑센터나 ㅇㅇ단지 등의 ‘어서 와서 보고 사주세요’를 외치는 건물 또한 이름을 보면 그 건물의 정체를 알 수 있다. 무슨 일을 하는 지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효율적일 터이니...
옛 건물에는 한자 어귀를 빌어 와 정신을 집어 넣거나 풍경을 담기도 한다.
경복(景福)궁 - 큰 복이 깃들인 궁궐.
운현(雲峴)궁 - 구름이 넘는 고개 길의 집.
독수(獨守)정 - 홀로 지키겠다. 무엇을 원칙을.
녹우(綠雨)당 - 사시사철 녹색 비가 내린다 - 비자림 숲속에서.
청와대.
‘청와대’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은 것일까? 그 이름 속에는 정신이 들어있는 것 같지도 않고,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불명확하다.
단지 ‘푸를 청(靑)’에 ‘기와 와(瓦)’를 써서 ‘푸른 기와가 덮힌 집’이라는 그 건물의 모양만 말하고 있다.
청와대는 경복궁 뒤편 언덕에 있다. 경복궁의 동서남북 문 중 북문으로 나서면 바로 청와대로 들어설 수 있다.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의 후원 역할을 했던 곳이다.
경복궁은 조선이 5백년 도읍지 고려의 개경을 버리고 새로운 다짐으로 천도하며 새로 지은 궁궐이다. 아무 연고 없는 허허벌판에 자리 잡지는 않았다. 고려시대에 도읍 개경과 함께 3경이라 하여, 서경의 평양, 동경의 경주, 남경의 한양이 있었다. 남경 터가 바로 지금의 청와대 자리이다. 청와대 터는 지금의 대통령이 살기 전부터 사람들에게 살만한 곳으로 인식되던 곳이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때 전소되고 이어 270년간 폐허로 남겨졌다. 본 건물이 없는데 후원인들 무슨 소용이랴... 그러다가 고종때 다시 경복궁이 세워지고, 원래의 모습대로 북쪽문을 통해 들어서는 후원에도 여러 건물이 들어선다. 그 중 경무대(景武臺)라는 이름의 건물도 들어서게 된다.
경무대.
일제는 조선의 상징 경복궁을 가로막으며 조선총독부를 세우고, 총독이 머무를 공간으로 경무대 자리에 총독관저를 마련했다. 해방후 총독관저는 미군정 장관이 차지하고 경무대란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이때의 경무대는 영문 이니셜로 KMD였다. 그리고 미군정 이후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대통령 관저로 경무대를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의 모든 권한을 쥐락펴락 하던 이승만 정권 시절 경무대는 독재의 상징이었다. 부정선거와 독재에 항거하는 세력에 밀려 이승만이 쫓겨나 독재가 허물어지고 들어선 정부는 경무대라는 이미지를 쇄신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새로 짓기로 했다.
개명추진위(그런게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에서 마지막으로 올린 두 개의 이름은 화령(和寧)대와 청와대.
청와대야 귀에 익숙하니 그러려니 쳐도 느닷없는 화령은?
화령은 조선이 처음 국호를 정할 때 물망에 올랐던 이름이다.
어쨌든 두 이름중 당시 대통령인 윤보선은 청와대로 결정한다. 사람은 자기의 앎과 경험속에서 판단할 뿐이다. 윤보선 대통령은 고고학 전공이다. 그것도 전통의 영국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다. 고고학자에게 ‘청자로 지은 집’이라는 청와대라는 이름은 얼마나 매력적이었을까.
그리고 국제감각을 익힌 이에게 미국의 White House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거 같은 이름이라니...
지금의 청와대 건물은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이후 노태우 때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 청와대는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청와대가 언제부터 일반 백성에게 관람이 허용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김대중 정부때부터 청와대를 출입했다. (출입이라고 쓰니 감투라도 하나 쓴 듯 하다.) 정권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출입하다 보니 각 시기마다 비교가 된다.
청와대를 체험학습으로 방문하면 처음 10분이내의 영상물을 보게 되는데, 그 영상이 새정권때 마다 바뀐다. 영상속에서와, 청와대 길을 걸으며 비일상적인 상황을 맞이하면 정권의 색깔을 보기도 한다.
청와대 문을 열어 둔 것은 백성과 함께 함이다.
<맹자>에 그런 구절이 있다.
“내 사냥터는 조그맣고 예전 문왕은 사냥터가 엄청 넓었는데, 문왕은 좋은 임금이라하고 왜 난 욕하는가?” 라는 질문에 “문왕은 사냥터를 백성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與民樂)” 이라는 구절이 있다.
백성과 함께 하는 것. 청와대 내부 비서관들이 머무는 건물이 있다. 그 건물의 이름은 여민(與民)관이다.(여민관은 몇 년전에 위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청와대 문을 개방하는 것은 백성과 함께 하기 위함인데, 현정부 들어선 간혹 동선길이 가로막히기도 한다. 그녀가 지금 지나는 길일까 생각해 본다.
바로 앞 정부땐 대통령이 일반 관람객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는데...
백성과 함께라야 한다.
오늘도 청와대에 다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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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3. 전주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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