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벽루, 내 마음을 향해 묻는다
한옥마을을 빠져나온 순례자는 이제 전주천을 만나게 된다. 전주의 탄생 이전부터 존재했고 '전주'라는 성읍이 태어나고 변화해온 과정을 모두 지켜본 물길이 전주천이다.
그 전주천의 물길이 막 전주로 진입하는 지점에서, 마치 사람들에게 지금부터 큰물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요량인지, 제 몸을 크게 한 번 비튼다. 그 굽이의 꼭지점에 서 있는 게 한벽루이다.
거기, 한벽루에서 내려다보면 전주천은 ‘나를 향해’ 달려오는 물결이다.
순례자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 저 먼 쪽 어디에서부터 전주천의 물결은 ‘나를 향해’ 세차게 달려드는 것이다. 마치 마중이라도 나왔다는 듯이, 혹은 이 물길이 끝이 어딘지 궁금하지 않니?, 물어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벽루 앞에서 전주천은 제 몸을 뒤집어 소용돌이치며 흘러간다.
사실, 순례자의 도보 방향이 전주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백두대간 슬치 어름에서 시작된 전주천은 호남의 지형 특성에 따라 금만평야와 서해 바다를 향해 북서진(北西進)하고 순례자는 남동진(南東進)하는 탓에 생기는, 별스럽지 않은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 도심을 막 빠져나온 순례자에게 전주천의 물결은, ‘당신, 지금 길에 나섰군요. 어디로 갈 건가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특별한 존재처럼 보일 때가 많다.
아무리 짧아도, 여행이란 자신의 일상과 결별하는 일. 우리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잘 짜여진 정주(定住)의 공간이지만, 길에 나선다는 것은 낯설고 예측불가능한 유랑(流浪)의 물결을 내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일. 여행, 그리고 순례의 낯선 출렁임을 저 물결이 먼저 우리에게 예고해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떠나야만 만나게 되는 것들… 순례길이란 그런 것들을 찾아나서는 길이다.
‘나를 향해’ 달려오는 물결은 끊기는 법이 없다,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물음처럼, 그리고 그때마다 삶의 이정표는 늘 크게 흔들렸었다… 내가 얕게 흐르면 세상의 물소리도 시끄러웠고, 때로 물의 깊이를 응시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건 내가 잠시나마 마음의 풍파를 간신히 가라앉힐 수 있었기 때문…
내 마음의 수심을 내려다보는 일과 이 물길의 시원(始源)이 어디인지 궁금해 하는 일은 사실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물음만 있되 답은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런 상념도 잠시, 순례자는 곧바로 작은 고민과 마주하게 된다. 이 물길의 왼쪽 편으로 걸을 것인가, 아님 오른 편으로 걸을 것인가?
순례길 사무국에서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길은 왼쪽 길이다.
하지만, 오른쪽 길에도 볼 것이 너무 많으니 고민이랄 수밖에… 두말 할 것도 없이 가장 좋은 방법은 양쪽을 오가며 모두 다 찾아보는 방법이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모두 시간 속의 여행자들,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인생들이다.
그래서일까, 난 오랫동안 이 전주천변의 한쪽에서 맞은 편 언덕을 건너다보는 일로 한 시절을 지낸 적이 있다. 봄의 이른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시름시름 이곳에 앉아 중바위를 보고 있노라면, 물 건너 저편에서는 꽃이 피고 지고 새순이 돋고 녹음이 짙어졌다가 낙엽 진 산 응달 아래 오랫동안 눈이 쌓여 녹지 않고 있는 풍경들이 물무늬처럼 흘러가곤 했다. 그러다가 물을 건너 반대편 산그늘 아래 숨어들면, 도시와 차량의 불빛들이 어룽이며 반짝이다 잦아들곤 했었다…
그 시절에는 일찍 나이 들기를 희망했었는데, 지금은 그때 그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동자가 조금씩 그리워진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이쪽과 저쪽. 나이가 들어도 내 눈길은 언제나 건너편에 가 있다.
갈래길을 앞에 둔 순례자의 첫 번째 고민이 시작되는, 한벽루 앞으로부터 ‘좁은목’ 약수터 사이는 100여 년 전만 해도 전주부성의 남쪽 외곽 방위선이라 할 남고산성의 관문에 해당하는 곳. 전주천의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 길은 남쪽으로 만마관(萬馬關), 관촌, 임실, 오수, 남원으로 이어지는데, 조선시대엔 한양~통영 간을 잇는 길이라 하여 ‘통영대로’라고도 불렸었다.
당시 조선 제6로였던 이 길로 백의종군에 나선 이순신이 터벅터벅 걸어 내려갔고, 춘향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이몽룡에게 전하기 위해 방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으며, 그 한참 뒤로는 ‘척양척왜’의 기치를 높이 든 동학농민군이 이 길을 가득 메웠던 적도 있었다.
현재, 주요 간선로인 17번 국도와 전라선 또한 크게 봐서 이 길과 행적을 같이 하고, 지금은 완주-순천간 고속도로까지 가세했다. 한 마디로, 우리 앞에 놓인 이 길은 아주 오래된 길이다. 그 오래된 길엔 오래된 시간과 함께 오래된 이야기도 즐비하게 깔려 있다.
결국, ‘나를 향해’ 달려오는 전주천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역사 속으로 뛰어드는 길이며… 역사와 마주하는 일에는 늘 관점과 평가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전주천 왼쪽 길을 걸을 것인가, 오른 쪽으로 갈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 역시 어떤 역사적 풍경과 먼저 마주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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