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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속(), 전통과 현대, 경기전과 전동성당 사이

풍남문 앞에서 팔달로만 건너오면 거의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경기전과 전동성당이다.

 

그리고, 그 사잇길인 태조로를 따라 이어지는 한옥마을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물결치는 것 또한 눈에 들어온다. 맛있는 국수나 팥빙수를 찾아서, 작은 공예품 공방에 머무는 눈길을 따라 걸음도 멈출 때, 사진 찍기 좋은 곳에 발길이 들어서는 자리, 곳곳마다 그 여행객을 응대하기 위해 또 사람들이 움직인다. 쉬는 법이 없다.이 거리에는 천 년 전에도 이와 같이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것이다, 때로는 사람들이 북적거렸을 것이고 때로는 한적하기도 했겠지만, 이 거리가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오가고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자리였음에는 지금과 별 다름이 없을 것이다. 다만, 옛 사람들은 시간 속에 스러지고, 지금은 우리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일 뿐

 

역사란 이렇게 흘러가는 사람들의 물결을 총칭일 터, 사람들의 자취가 가뭇없으니역사의 흔적을 좇는 우리 눈길은 시간의 풍파를 견뎌낸 건축물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된다.

 

경기전의 주춧돌이 저기 놓인 지 어언 6백여 년, 전동성당도 어느새 백 년 넘게 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하며 이제 함께 늙어가는 친구처럼 보이지만, 아마 처음에 저 곳에 전동성당이 처음 들어섰을 때는 그 풍경이 그리 조화롭게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태생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전동성당

 

잘 알려진 것처럼, 경기전은 조선의 창업자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이다. 태조 사후 3, 그의 아들 태종은 이곳 전주에 아버지의 초상을 모셨고 그때부터 전주는 태조의 영혼과 위광, 조선조의 출발을 상징적으로 기리는 도시가 되었다.

 

전주 이씨의 관향에 들어선 경기전은 지방에 있는 작은 종묘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감히 왕조의 본향인 이곳에서 왕조의 신성, 정통성에 대한 의문은 용납될 수 없었다. 엄숙한 권위, 왕조의 케리그마(kerygma)의 공간적 현신이 경기전이었다. 예교(禮敎)가 실질적 지배적 이데올로기 역할을 하던 당시, 공경의 대상으로서 새 왕조를 연 태조를 능가할 존재가 조선조에 또 있을 수 없었다. 경기전은 새 왕조의 성소가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영원불멸한 것은 없다, 영원에 대한 꿈만이 불멸일 뿐

 

임진년, 병자년을 거치는 동안 조선 왕조는 점차 쇠락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회광반조(回光返照)에 해당했던 영정조 시대를 지날 무렵, 전 세계는 제국주의의 발호에 따른 식민지 쟁탈전이 가속화되고 있었으나 조선왕조는 세계사의 거대한 변화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 했고 주체적으로 대응하지도 못 했다. 쇄국은 비장한 결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대착오적이었다. 조선이 역사의 황혼 속으로 스러지자, 혹독한 20세기의 새벽이 열렸다.

 

인류의 역사는 종교의 전파 과정이 피로 얼룩져있다고 증언해준다. 현재 우리들이 종교를 바라보는 태도가 개인적인 것이라면, 근현대 이전의 종교는 대개 집단적 가치 판단의 최종 기준이기도 했다. 따라서, 새로운 종교의 도래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었으며, 국제적 관계에서는 정치-군사-문화적 침탈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여, 하나의 종교가 뿌리내리기 전에 순교자의 피가 먼저 그 대지를 적셨다. 한반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불교의 유입과 정착, 천주교와 개신교의 도래전파 과정은 모두 피로 얼룩진 도정이었다.

 

지금 현재 전동성당 자리 또한 그런 곳이다.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를 낳은 신해박해(1791)와 그 뒤에 이어진 신유박해(1801)를 통해 종교적 신념을 자신의 목숨과 바꾼 윤지충과 유항검 등 순교자의 혈흔 위에 여기 전동성당이 세워졌다. 전주성벽이 철폐되던 중인 1908년에 전동성당 공사가 시작되어, 철거된 풍남문 성벽 자재들은 전동성당 건축 부자재로 쓰였다고도 한다. 성당이 완공된 것이 1914년이니 이미 조선이라는 나라는 사라진 때. 세상은 이렇게 변한 것이다.

나라는 망하고, 성문은 좌우 성벽이 모두 헐린 채 치욕으로 덜렁 남았으며, 경기전을 둘러싸고 있던 왕조의 광휘는 그 빛을 모두 잃어버렸다.

 

졸지에 식민지 백성이 되어버린 이들은 몰락해버린 왕조의 잔해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애쌍하게 여기는 마음, 함께 아파하는 마음과 함께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왕조에 대한 배신감과 원망 또한 컸을 것이다. 그 복잡한 시대의 흉중 속에서, 경기전에 대한 경외감은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만다. 왕조의 성소는 차츰차츰 전주시민의 도심공원으로 바뀌게 된다.

 

경기전이 보유하고 있던 성소의 엄숙성은 전동성당에게 그 바통을 넘겼다. 100년 전, 전동성당은 음울한 망국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이 지역에 새로운 성소로, 또 새로운 변화의 강력한 상징으로 떠올랐다.

 

경기전은 지나간 과거, 전동성당은 새로운 현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한옥마을이 이 일대에 조성되기 시작했다. 전주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다가동 일대에 자리를 잡자, 조선 사람들은 일본인들을 피해 이쪽에 새로운 주거지를 건설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고풍스럽게 보이는 한옥마을도 백 년 전에는 삐까번쩍한새 도회지였던 셈이다.

 

경기전

물론, 시간이 흐른 지금 경기전과 전동성당, 한옥마을은 누적된 시간의 층위에 상관없이 모두 오래된 곳이 되었다.

 

그리고, 한옥마을의 낡은 가옥을 새롭게 리모델링하거나 새롭게 지은 한옥에 외래어로 표기된 간판을 가진 음식점, 커피숍, 공방들이 새롭게 들어서고 있다. 고색창연한 한옥 골목을 상상하고 한옥마을 찾아온 관광객들은 한옥 안을 치장하고 있는 모던풍경에 잠깐 놀랄 수도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것이다. 지금 현재의 한옥마을 모습이 이대로 십 년, 이십 년 흘러가면 또 그대로 새로운 전통이 되어 옛 전통에 합류하는 것

 

아마, 백 년 전에는 외래종교의 상징이었을 천주교 전동성당은 이제 우리 고유의 것이 되었다. 관광객들은 망설임 없이 전동성당 안으로 들어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시간 속에서 엄숙한 천주교의 순교 성소는 친숙한 관광 명소로 변하고 있다, 깊은 산속 외딴 절간에 등산객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천주교가 우리 안에 우리의 종교로 이렇게 녹아드는데 시간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삶과 마음속에서 하나 되기 위한 천주교인들의 오랜 노력이 있었고, 마침내 전동성당을 무엇보다도 소중한 우리의 자산으로 여기게 된 우리 내부의 변화가 있었다.

 

경기전과 전동성당 사이, 또 오래된 한옥마을과 새로운 한옥마을 사이, 성과 속, 전통과 현대의 사이에는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자세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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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역사기행] 6. 풍남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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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근점(圖根點) 혹은 길의 뿌리, 풍남문

누구나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가슴 설레는 단어들을 몇 개씩은 갖고 있다.

 

내게는 도근점(圖根點)’이라는 말이 그렇다. 지도와 같은 것을 그릴 때, 동서남북을 분할하는 중심 좌표, 그게 도근점이다.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릴 때 화면을 9분할하는 일은 종횡이 교차하는 4개의 도근점을 먼저 찍어야 가능해진다순례길의 경우, 1~9코스가 시작되고 갈무리되는 각 지점이 이러한 도근점에 해당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 단어를 도근점(道根點)으로 오독하기 시작했다.

길이 시작되는 곳, 길이 뿌리내린 곳

사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도근점이란 단어가 주는 울림은, 오독이 만들어낸 감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굳이 오독을 고집했던 이유는 도로원표(道路元標)라는 말이 너무 무미건조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낯선 도시에 들어설 때마다 내가 흘러들어가는 이 길이 마침내 멈추는 곳, 그리고 또 다시 활기찬 분기가 시작되는 곳을 찾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 여기서, 이 길들이 뻗어나가는구나, 자신이 뻗어나갈 앞자리에 무엇이 기다릴지 불안보다는 더 큰 기대를 안고 이 길은 여기서 이렇게 첫걸음을 시작하는구나!

 

순례길은 전주 풍남문에서 출발한다.

, 이 순례길의 첫 도근점, 떠나서 마침내 돌아와야 하는 자리가 바로 이곳인 것이다.

풍남문 앞에서, 여장을 꾸리며 나는 생각한다.

왜 하필 이곳인가, 왜 이 자리를 출발점으로 삼았는가?

아마도 이 순례길을 처음 구상하고 설계한 이들도 스스로 자문했을 것이라고 나는 또한 생각한다.

 

어디가 우리 순례길의 출발점이어야 하는가?

시점(始點)이 곧 시점(視點)이다. 왜 이 자리가 출발점인지 이해하는 것이 순례길전체를 이해하고 조망할 수 있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이 순례길은 어떤 기획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는가?

 

사진출처: 루비의 정원 

 

좌우 성벽을 대부분 잃은 채, 이제 두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풍남문을 보고 있노라면, 동물원 철창 안에 갇힌 호랑이가 떠오를 때가 있다. 한때, 시베리아에서 만주벌판, 백두대간을 벼락같이 종횡무진하였던 호랑이가 숫제 살아있는 박제 취급을 받으며 하나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처럼, 풍남문은 지나가버린 한 시대의 앙상한 잔해로 저기 간신히 버티고 서 있다.

 

지금은 이런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거의 없지만, 삼국시대~고려~조선으로 이어지던 지난 왕조 시절 내내 한반도는 성읍(城邑) 국가였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반도 곳곳의 주요 요충지는 모두 성곽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조선 왕조의 도읍지였던 서울도 그렇고, 정조가 신축한 수원화성도 그렇지만 이곳 전주 또한 천 년 이상 겹겹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성시(城市)였다.

 

수원화성

 

단단하고 커다란 집, 내가 이 성벽을 통해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외침에 대한 방어의 역할 외에도, 성벽 내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소속감과 안도감을 안겨 주는 곳이 성이었다. 사대문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거주 자격을 갖춘 계층이 당대의 질서와 생활 방식에 순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성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성 안 사람은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여기 전주성은 견훤이 후백제 건국을 선포하였을 때에는 왕성(王城)이었고, 경기전과 전주사고가 건립되던 시기에는 왕조의 발상지로 특별하게 관리되던 곳이었다. 따라서,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에게 전주성이 함락되었다는 것은 호남 최대의 군사적 거점과 병참을 상실했다는 것 이상의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전주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호남 전체가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조선의 사직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다는 뜻이었다.

 

마찬가지로, 1894년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하고 집강소를 설치했다는 것은 오래 된 왕조의 요새가 함락되었다는 의미와 함께, 당시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버려야 하는가?’, 마음 밑바닥부터 흔들리는 혼란스러움과 새로운 각성을 안겨줬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1906년 일제 통감부의 철폐령에 의해 동문, 서문, 북문은 모두 헐린 상태에서 모질게 혼자 살아남은 저 풍남문의 존재란, ‘천 년 전주가 겪은 영광과 상처를 모두 집약하고 있는 상징물이 아닐 수 없다.

 

동양의 오랜 왕토(王土) 사상이 낳은 결과, 남쪽으로 난 길이나 대문(주작대로, 숭례문 등)은 왕화(王化)가 백성을 향해 뻗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 나라 임금의 상징적 좌표는 늘 남면(南面)하고 있는 북극성(北極星)이었다. 신민들은 북대(北對)할 따름이었다. 전주 이남의 모든 신민은 저 풍남문 앞에서 저 먼 북쪽의 임금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던 것이다. 풍남문은 전주에 현신한 왕조의 위풍당당한 수문장이었다.

 

  그랬던 풍남문이 이제 빗장의 기능은 모두 상실한 채, 간신히 고건축물로서의 가치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게 시간이고 역사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왕조도 가뭇없이 사라졌지만 풍남문은 남았다, 흘러간 것은 흘러간 대로, 남은 것은 또 남아 엄연한 자취

 

지난 백 년 동안 한반도가 겪은 변화는 아마도 그 이전의 천 년, 이 천 년 시간을 모두 합해 놓은 것과 맞먹을 정도로, 압축적인 격변의 연속이었다. 그 돌연하고 엄청난 변화가 휘몰아친 전주의 백 년을 저 풍남문이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왕조의 정치, 문화, 물류, 교통의 중심지였던 전라도의 중심도시, 전주의 상징물이었던 풍남문은 옛 영화를 모두 다 상실한 대신, 이제 시대가 변화했다는 것을 제 몸으로 증언하고 있다. 옛 시대의 아이콘으로 제 역할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풍남문 반경 내에 함께 어깨 겯고 있던 것들도 풍남문과 그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

 

전라도를 호령했던 전라감영 자리는 진즉에 사라져 복원마저 감감한 지경이 되었고, 그 자리에 일제에 의해 지어져 오랫동안 도청 건물로 기세등등하였던 옛 전주부청 건물도 어쨌건 곧 헐리게 될 것이다. 한때는 전주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다가동파출소 근처 표구점 골목. 운치 높게 고서화를 배첩하던 그 자리는 웨딩 타운에 물려주었고, 남부시장과 용머리고개 또한 예전의 성망을 되찾기는 좀처럼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원탑의 기억과 함께 전주 번영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팔달로도 이제 사통팔달(四通八達)을 호언하던 때를 지나 그저 구도심을 상징하는 도로의 하나로 위치가 내려앉았다.

 

이렇게 풍남문과 풍남문 주변의 풍경들은 제 몸으로 역사가 되는 중이다.

 

그 많던 표구점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의아하지만 완판본다가서포가 사라진 것처럼 한 시대의 문물은 시대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진다. 그렇다고 서러워하거나 아쉽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렇게, 또 새로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돌과 흙과 나무로 이루어진 구조물이었으나, 시간 속에서 차츰차츰 역사적 생명을 획득한 존재가 지금 여기 서 있는 풍남문이다. 변화의 결과로 쇠락하였으나, 그 쇠락의 시간을 견뎌낸 탓에 또다시 전주의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것을 목격하는 자리에 서게 된, 시간이 빚어낸 역사적 인격’, 풍남문.

 

길을 걷다 보면 때로, 내 몸 전체가 바람 같은 것에 의해 관통당하거나 내 몸이 무엇인가를 꿰뚫고 지나간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보이지 않는 어떤 시간층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풍남문 앞,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신발끈을 다시 조여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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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강_ 

그, 그녀


인칭대사.

우리말은 나와 너를 많이 쓰고 라는 표현은 잘 안씁니다. 우리가 보통 아빠계시니?’ 라고 물으면 아빠 안계신데요.’ 또는 안계신데요라고 말하지만, 중국어에서는 아빠를 물어보는 말에 대한 대답으로 아빠를 다시 쓰지 않고, 그 대신에 라는 말로 응대하고, 역시 엄마라는 말은 그녀라는 말로 받습니다.

 

1인칭 나 wǒ []

2인칭 nǐ [] 당신 nín []

 

3인칭 그와 그녀 표현에 대해 알아볼께요.

 

tā []

tā [] 그녀

글씨도 이쁘고 소리도 참 이뻐요.

외국어로 중국어를 대하는 우리에게 실은 1성이나 4성이 편해요.

 

3인칭은 그냥 1성으로 ~~’ 음계로 빼면 됩니다.

-’ 이 뭔데요?

동요 <산토끼> 처음 시작할 때 [-] 계이름 높이로 쭉 빼라구요.

그녀도 그도 모두 [-]

 

한자 그를 나타내는 글자 - 는 우리도 자주 쓰는 글자이고, 여성 그녀 - 는 남성 그가 있고 그 이후에 만들어진 글자인 듯 합니다.

한자 여자 여()’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는 본다.

그는 봅니까?

그는 안봅니다.

그녀는 먹습니까?

그녀는 안먹습니다.

이런 말들을 할 수 있겠지요.

 

바로 총정리 표현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배운 표현 총정리 >

 

그는 잘 지내나요?

그는 아주 잘 지내요.

그녀는 봅니까?

그녀는 안봅니다.

그는 안먹어요?

그는 마십니다.

그녀는 안마셔요?

그녀는 마십니다.

그는 큽니까(나이가 많아요)?

그는 매우 큽니다.

 

-----

 

그는 잘 지내나요? 他好嗎? Tā hǎomȧ? [타 하오 마]

그는 아주 잘 지내요. 他很好Tā hěn hǎo. [타 헌 하오]

그녀는 봅니까? 她看嗎? Tā kàn mȧ? [타 칸 마]

그녀는 안봅니다. 她不看 Tā bú kàn. [타 부 칸]

그는 안먹어요? 他不吃嗎? Tā bù chī ma? [타 뿌 츠 마]

그는 마십니다. 他喝Tā hē. [타 허]

그녀는 안마셔요? 她不喝吗? Tā bù hē ma?̇ [타 뿌 허 마]

그녀는 마십니다. 她喝Tā hē. [타 허]

그는 큽니까(나이가 많아요)? 他大嗎? Tā dà mȧ? [타 따 마]

그는 매우 큽니다. 他很大Tā hěn dà. [타 헌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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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따라 우리의 삶이 흘러왔다

 

릴케의 말년작 중에 대략 이런 내용의 시가 있다.

 

삶이란, 삶이란 항상 나의 밖에 존재한다

 

이 시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사실 크게 궁금하지도 않다. 때로 시인의 말은 우주적인 관통, 찰나의 깨침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니그런데도 내가 이 구절을 지금도 흥얼거리는 것은 아마도, 내가 금강 상류 지역인 진안에서 나고 큰 탓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지금은 용담댐으로 고인 물이 되었지만, 진안읍내에서 상전 월포, 수동을 거쳐 용담을 향해 세차게 흘러가던 금강 지류는 어린 시절, 내 상상력의 발원(發源)이었다.

 

내가 다니던 진안동국민학교는 그 물줄기를 따라 이어진 긴 방둑을 걸어야만 당도할 수 있었던 곳저 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나는 아침 저녁으로 그게 늘 궁금했다. 왜 가만 있지 못하는 것일까어디로 저리 바쁘게 자신을 휘몰아가는가구름이 이슬이 되고, 마침내 한바다에서 다시 수증기로 피어오르는, 현기증 나는 윤회(輪廻)가 저 강은 싫증나지도 않는다는 것인지무한한 시간과 공간 앞에서 절망하거나 궁금해 하는 사람이 어찌 파스칼 한 사람 뿐이겠는가.

 

어떤 역사적 기점부터 한양을 겨냥한 활시위 같이 흐른다 하여 금강을 역수(逆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아마 중학교 때쯤 들었을 것이다, 중학교는 초등학교보다 더 진안천 상류에 위치했다, 나의 강이 조금 더 길어졌던 시기그 이야기가 좀 우습게 들렸다, 여기서 보면 순행인 것을 어떤 이들은 역행이라고 부른다니사람은 자신이 속한 지세로부터도 이처럼 자유롭지 못 하다. 릴케 시를 읽었던 것도 이즈음이다.

 

자신을 늘 밖으로 밀고 나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난 어렴풋이 이 시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금강 휘돌이는 덕유산으로 인해 시작된다

 

잘 알려진 말이지만, <산경표>의 국토관에 의하면, 산은 물을 넘지 못 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 한다. 금강의 태극형 휘돌이는 바로 이와 같은 산과 강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덕유산과 백두대간이 높이, 단단하게 휘감은 상류 지역을 진안고원이라 부르고, 금강과 섬진강이 여기서 발원, 하류 지역을 향해 흘러간다. 섬진강은 남행이고, 금강은 북행을 하다가 돌연 휘어져 서행한다. 이 또한, 지리학자들만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한반도의 동고서저 지형, 땅의 기울기와 관련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물줄기의 흐름에 따라 사람살이가 좌르륵 펼쳐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상의 문명은 모두 강기슭에서 피어났다. 여기에 훈요십조에서 이야기했다는 차령 이남과 같은 조건이 합해지면서 금강이 흘러가는 길에는 백제와 후백제의 역사가 함께 흘렀다. 우리가 교과서에 배운 한, 백제 전성기에는 한강~금강~만경강-동진강~영산강 유역까지 국력이 미쳤고, 미약할 때는 금강, 만경-동진강, 영산강 수계로 오그라들었다. 이를 크게 규정하는 것은 백두대간의 흐름, 더 좁혀서는 덕유산 자락이었다. 견훤의 후백제 역시 이 강줄기와 산줄기를 경계로 삼았다. 덕유 산자락 나제통문이 잘 보여주듯 백두대간은 신라와 백제를 나눈 국경이었고, 강 유역은 자고 나면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공방전의 현장이었다.

 

이런 지리적, 역사적 조건은 우리의 국토관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금강 유역에 핀 백제와 후백제의 역사에 선홍핏빛이 스민 것은 주지의 사실, 금강 또한 우리에겐 붉은 해거름의 강이 되고 말았다. 의자왕이나 견훤의 고사는 물론, 근세 곰나루 동학군의 혈진 함성까지서해안 낙조를 보면서 슬픔을 느낀다면, 당신의 풍경관에도 역사적 감각이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쉽게 만나기 힘든 일출에 비하면 도시 한 가운데에서도 볼 수 있는 낙조야말로 일상에서 늘 접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한국인에게 유독 사랑을 받는다는 밀레의 <만종>을 보며, 우리는 겸허한 만족감을 느끼지 애절한 슬픔에 잠기진 않는다. 아마도 밀레의 그림 속에서 보는 이국적 풍경 속에서 역사적 상관성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풍경과 사람의 인식 사이에는 이처럼 역사적 선입관이 개입한다.

향적봉에서 남덕유로 이어지는 덕유산 종주길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절로 한숨이 나는 것은 이와 같은 역사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그 덕유산 자락 저쪽 한 편에 뜬봉샘이 있다.

 

 

물뿌랭이라는 말과 뜬봉샘이라는 말

 

장수 신무산 기슭, ‘수분령바로 옆에 있는 뜬봉샘은 금강의 발원지로 공인된 곳이다. 장수(長水)라는 지명, 수분령(水分嶺)이라는 고갯마루,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천천(天川) 월곡(月谷)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마을까지이 근처 지명은 온통 과 관련이 있다.

 

뜬봉샘을 오르는 동안, 이곳 주민들이 친절하게 붙여놓은 안내판을 읽는다. 거기, 이곳이 예전부터 물뿌랭이마을이라고 불렸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옛사람들도 여기가 금강의 시원임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겠다. 언젠가 유강희 시인과 더불어, 또 언젠가는 추석 가족 나들이로, 또 언젠가 혼자서 이곳을 오르는 동안, 난 왜 이 아름다운 이름 물뿌랭이를 버리고, ‘뜬봉()이라는 해괴한(?) 명칭을 채택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기 말고도 전라도 여러 산하에 두루 자취를 남긴 조선 개국조 이성계가 여기서 기도를 드렸더니, 봉황이 훌쩍 날아갔다고 해서 뜬봉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것인데설령 이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뜬봉샘은 600살 남짓, 물뿌랭이는 그보다 더 나이를 먹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개악(改惡)된 지명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

 

한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또한 부질없다. 물뿌랭이든 뜬봉샘이든, 우리가 그 무엇이라 부르든, 그 훨씬 전부터 저 샘은 여기 샘솟아 흘러내렸다. 몇 만 년, 몇 억 년 내리 여기서 흘러 목마른 생명들의 목을 축였을, 성스러운 어머니 강 앞에서 고작 우리끼리 붙인 이름을 두고 맞네, 틀리네 왈가왈부하는 것이야말로 경망스러운 일.

 

용담호, 탑돌이 하는 길

 

난 용담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도 모르게 흥분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를 시정하고픈 마음은 없다. 수몰된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무덤덤한 것이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그런다고 무엇이 바뀌는 것이 아닌 줄 번연히 알지만, 난 내 고향에 대해 최소한 그 정도 애정은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 나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

 

하여, 내게 용담호 주변을 둘러보는 길은 언제나 탑돌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용담호나 그 주변 풍경만 둘러보는 이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으리라, 곳곳에 세워진 물망(勿忘), 비망(備忘)의 기록들.

 

난 거기 새겨진 글 혹은 명단을 찬찬히 더듬을 때마다 진진한 떨림을 느낀다. “천 년 만 년 흘러가도 잊지 못할 내 고향아 / 꿈속에서나마 다시 보면 내 어찌 그 꿈 깰고라는 투박한 새김에 가라앉아 있는 마음의 격한 떨림, ‘**’부터 00’에 이르는 이향민들의 이름까지

 

잊지 못 하는 것 혹은 잊지 않겠다는 그 마음이 나를 아프게 한다. 투사(投射) 대상을 잃은 사랑만큼 애절한 사랑도 없다. 마음은 넘치는데, 보듬을 수 없는 사랑대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랑이 희미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여기를 떠난 사람들에게 시간은 물속에 갇혀버렸고, 땅은 사라졌다. , 그리워할 고향이 사라진 것이다. 고향에서 늙어가면서 어린 시절 잘 몰랐던 풍경들을 눈에 익히며, 마침내 그 자신이 풍경의 일부로 스며드는 것산다는 것은 그처럼 공간과 친화하고, 친화된 공간 속에서 소멸하는 일이다. 낡은 풍경, 늙은 얼굴들이 서로 교환(交歡)하는 곳이 고향이다.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일을 물길을 거슬러 근원에 당도하는 것과 같이 비유한다면, 여기를 떠난 사람들을 물길이 막혀 거슬러 오를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흘러갈 수도, 거슬러 오를 수도 없는 생애용담호가 생긴 뒤로 아침 안개가 부쩍 늘었다. 새벽에 이 길을 지나가다 보면 마치 수룡의 한숨처럼, 실향민들의 한숨이 엉겨 저 안개가 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아무리 한스럽게 생각해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담수된 용담호의 물은 완주군 고산의 배관 터널을 통해 전주, 익산, 군산 시민들을 향해 흘러가고, 새만금으로 인해 수질 보전이 더 크게 문제되는 동진강과 만경강의 역할 부담을 다소나마 줄여준다.

 

새로운 물의 흐름을 우리들이 만든 것이다. 결국, 하나의 흐름이었던 금강은 용담호를 통해 고산 쪽으로 흐르는 새로운 용수 환경과 1980년대에 준공된 대청댐 수계로 나뉜 셈이 되었다. 한 나라였던 백제의 강역이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들의 구획에 의해 충청도와 전라도로 나뉜 것처럼, 금강도 이제 대청호와 용담호 주위로 구분되게 된 것이다.

 

강의 생애도 이처럼, 강의 바깥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내 걸음은 이제 금강 물줄기를 따라, 백제의 흔적을 찾아간다. 고향을 떠난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 한다. 댐이 생기면 연어의 회귀가 불가능한 것처럼하지만, 진안을 떠난 이들의 삶이 금강처럼 여러 유역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이 길에 그들을 만나, 그들이 어떻게 새로운 고향을 조성하고 살아가는지 알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나를 바깥으로 밀고 간다.

 


<이전 연재글 보기>

[우리땅역사기행] 4. 강경의 몰락과 군산

[우리땅역사기행] 3. 지리산 이현상 비트

[우리땅역사기행] 2. 선암사에서 송광사 가는 길, 20년

[우리땅역사기행] 1. 망해사라는 상징 -불안전한 이동이 우리 삶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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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게 비지떡

一分钱一分货

yì fēn qián yì fēn huò 

이펀 치앤 이펀 후오

 

중국에서 제일 낮은 화폐단위가 입니다. 거의 우리의 일원짜리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 일원짜리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오죽 할까요. 그래서 가치 없고 볼품없는 싸구려 물건을 一分钱一分货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싼게 비지떡이라고 하는데 비지는 두부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말합니다. 거기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넣어 만든 떡이 비지떡인데 맛도 없고 영양가도 없다고 합니다. 배고팠던 시절에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배가 고프지 않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볼품없는 먹거리였던 셈이지요.


싼게 비지떡을 중국어로 옮길 땐 일원짜리 물건이 다 그렇지라는 一分钱一分货로 옮겨 주세요.




 


 

불안감이 자신을 경계하게 만든다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는 국토

 

서해는 언제나 신생하는 바다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강줄기 대부분이 서남해안을 통해 바다에 합류하는데다, 서해안으로 빠져나오는 강줄기 중 평야 지역을 관통하는 한강, 금강,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등은 해마다 막대한 양의 토사를 하구에 쏟아 붓는다. 정기적으로 준설을 한다 해도 서해안 강줄기들의 하상(河床)은 뭍에서부터 거기까지 밀고나온 퇴적물들로 인해 금세 바닥 수위가 높아진다. 거기 밀려온 각종 잡동사니들이 여기 모여 발효하듯, 순연(純然)해진다.

 

서해안 갯벌은 이와 같이 충적하천이 운반해온 퇴적층을 원 자양분으로 삼아 너른 유역으로 발달했고, 연안 어업의 터전이 되었다. 늘 뒤채고 바뀌는 몸마치 출산을 치르고 훗배를 앓다가 또 몸을 갖는 여인의 자궁처럼 서해안의 강과 바다는, 신비로운 해와 달의 주기에 맞춰 조금과 사리를 거듭하면서 몸을 푼다. 이런 점에서 서해안의 갯벌과 포구들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강이 합심해 이룩한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서해안 포구들의 운명을 바꾼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이다. 간척과 염전 확장, 항만 건설 등으로 인하여 서해안의 해안선은 몇 번씩 고쳐졌다. 남양만, 아산만, 천수만, 가로림만, 비인만, 영암만이 그렇게 사라지거나 대폭 축소되었으며, 새만금 사업으로 인해 서해안 해안선은 또 한 번 크게 수정되고 있다. 귀동냥에 의하면, 이와 같은 간석지는 지구 탄생 이래 오염 정화의 기능 외에도 홍수 억제 및 태풍의 피해 완화 등의 기능을 담당해왔다고 한다. 자연이 스스로 결정했던 자신의 운명이 이와 같이 인간의 때를 만나, 수난을 겪는 중이다.





 

물론, 국토와 그 땅을 점유한 사람들의 생애는 함께 영고성쇠를 겪는다. 특히 비좁은(?) 한반도에 살아온 우리네는, 자신이 사는 터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싹~ 불싸지르고 이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를테면, 도망치고 도망쳐도 달아날 곳이 천지사방으로 터져 있던 중국 홍군의 대장정이나, 하루 종일 말을 달려 깃발을 꽂은 곳까지 모든 땅을 소유했다는 신대륙 침략의 방식 파 어웨이는 우리 국토 위에선 언감생심,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주검을 모셨던 방을 도배만 새로 하고 손자가 쓰는 것처럼, 한반도의 산하는 쓰고 또 고쳐 쓴 산하라고 할 수 있다. 갖은 전란 속에 다 파괴된 고향에 다시 들어가 재건을 하고 다시 땅을 일구고 살아온 것이 우리 국토의 내력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곳곳은 모두 켜켜이 역사가 쌓인 퇴적의 땅일 수밖에 없다. 만주나 연해주 혹은 대한해협을 넘어 일본으로 탈주했다는 이야기도 이미 오랜 옛이야기우리는 더 비좁아진 땅 위에서 서로 땀에 결은 어깨를 맞대고, 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야 하는 처지라고 할 수 있다. 아미시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환경운동하는 분들이 배워 줄곧 하는 말 중에 후손들로부터 빌려 쓰는 땅이란 말들을수록 묵직한 것이 이런 까닭이다.

 

강경의 흥망성쇠논강평야와 황산벌 전투

 

부여에서 논산, 강경 그리고 익산까지 이어지는 길은 툭 터진 벌판길이다. 논산평야라고도 하고 논강평야라고도 하는 이 너른 벌판은 전적으로 금강에 의지한 미곡 산출지라고 할 수 있다. 서해, 종착지를 향해 달려온 금강의 숨결이 가장 가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겐 논강평야보다 황산벌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나당연합군과 맞선 계백의 5천 결사대가 하필이면 이 자리를 자신들의 죽을 자리로 선택했는지, 이곳에 와 보면 절로 알게 된다. 서해와 금강과 평야가 모두 어우러진 이 지역은, 왕궁이 있던 부여의 입장에서 보면 남면(南面)의 안마당과 같은 곳, 집에 쳐들어온 도적을 맞아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는 자리이다. 사직이 이미 기울고 화살은 떨어지고 창끝이 부러졌어도, 내줄 수 없는 자리, 제 뼈를 깎아 창을 삼더라도 지킬 수밖에 없는 안사람, 안방, 안채, 안마당나라와 자신의 운명을 일찍부터 일치시킨 군인으로선 죽음이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는 방법일 때도 있다. 그게 북대(北對)를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지키고 살아온 자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역사는 짓궂은 것이어서, 동일한 장소에 동일한 장면을 또 한 번 연출하기도 한다후일 부자간의 내분에 휩싸인 후백제군이 왕건의 군대와 한반도의 지배권을 둔 마지막 대치를 벌이고, 자신이 이룩한 모든 것들이 마침내 다 무너지게 될 것임을 스스로 알게 된 견훤이 한 서린 눈을 채 감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 자리 또한 이곳이다. 금강과 황산벌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제와 후백제가 마지막 숨을 거뒀다. 신라와 백제군의 주검 위에 후백제군과 고려군의 주검이 쌓인 것이다.





그저 보기에는 풍요롭기만 한 이 벌판에 이렇게 뜨거운 피를 많이 흘린 역사의 탓일까. 동족상잔의 참극이 벌어지고 있던 6.25의 와중, 이곳에는 남한 최대의 신병훈련소인 2훈련소가 들어선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논산은 2훈련소가 있는 논산이다.

 

오늘도 연무의 입소대대 앞에는 연인친구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입영 장정들이 북적이고, 또 오늘 저녁 소정의 훈련 과정을 마치고 갓 출소한 이등병 초짜 군바리들은 강경역전에 줄 맞춰 쪼그려 앉은 채 자신의 2년 청춘을 싣고 갈 자대행 기차를 혼곤한 표정으로 기다린다. 스물 둘 내 청춘도 강경역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흐르는 강물처럼, 사람들이 늘 흘러오고 늘 떠나가는 자리, 논산은 이처럼 삶과 죽음, 도착과 출발,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으로 이제껏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쨌건 이러저러한 연유로 군사도시의 이미지가 강하게 덧씌워진 바람에 논산은 개태사, 관촉사, 쌍계사와 같은 명승을 남들에게 자랑할 기회도 적었고, 공주-부여-금마로 이어지는 백제문화권에서도 사실상 부수적인 위치밖에 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억울하기도 했을 것이다.

 

후백제의 몰락 이후 이곳 논산의 살림은 현 강경읍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조선 시대 강경은 원산과 함께 2대항으로 손꼽혔고, 강경장은 평양, 대구장과 함께 전국 3대 장시의 하나였다. 이미 평정되어버린 백제후백제의 땅이 정치적군사적 역할을 추구할 수 있었겠는가. 천혜의 자연적 조건을 적절히 활용, 강경은 피와 쇠 냄새를 지우고 새로운 상업도시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나갔던 것이다.

 

극히 분주하고 소란스러움을 뜻하는 속담, ‘강경에 조깃배 들어왔다는 이런 배경 하에서 나온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강경은 호서 지역 최대의 물류 유통 단지였던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관공서가 논산 신시가 쪽으로 자리를 옮겨 논산경찰서 정도만이 남아 있지만, 강경의 골목 골목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강경이 누렸던 오랜 영화의 흔적이 여전히 단단하다. 1905년에 개교했다는 강경초등학교, 여전히 우람한 한일은행 지점 자리 등도 볼만 하지만, 강경 최고의 경관은 예나 지금이나 옥녀봉에 올라야 볼 수 있다.

 

금강의 큰 줄기와 논강평야가 한 눈에 조망되고 뒤돌아서면 강경읍내 그 너머 황산벌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너르고, 이렇게 활짝 열렸으니 이곳은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요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옥녀봉 저무는 석양 아래 감상해보시라. 자연 경관과 역사의 풍경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조선 후기 최대 전성기를 누렸던 강경의 몰락(?)이 시작된 것은 1899년 더 아래쪽 금강 포구 진포가 군산항으로 개항하게 된 이후이다. 외세의 침략이 시작되면서 인천과 부산이 한반도의 주요 항구로 새롭게 부상하고, 강경시장이 갖고 있던 물류 유통의 기능을 군산항과 이리역에 넘기면서, 이제 강경은, 비슷한 시기에 항구의 기능이 대폭 축소된 곰소항 등과 더불어 젓갈 특산지 정도로만 알려진 곳이 되고 말았다. 서해안과 이 땅의 개땅쇠들이 겪은 소금 같은 세월이 발효시킨 음식이 젓갈이라면 강경이 젓갈 특산지가 되는 것이 옳을 듯 하다.

 

군산, 20세기 식민 근대의 살아있는 증거

 

군산은 한반도 근대화의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는 도시이다. 최무선의 진포대첩 이전, 천리 금강의 맨 끝자락에 자리한 이 포구는 역사적 존재감이 미미했었다. 아마 군산열도와 육지를 이어주는 배후지 정도의 역할이 진포에 부여된 유일한 소명이었을 것이다.

 

금강이 거둔 막둥이 자식과 같던, 그래서 갖은 집안일에서도 빠져 있던, 한가로운 어촌 진포의 운명이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외세가 물밀듯이 밀고 들어온 이후,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가 인천, 군산, 목포를 서해안의 주요 항구로 개발(?)하기 시작한 이후이다. 그동안 어떤 고을이 조금 더 크고, 어떤 마을이 좀 작은지를 결정한 것이 오랜 한반도 삶의 내력이었다면, 이제 외세가 식민지 경영을 위해 한반도의 지도를 새롭게 그린 것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가 가장 공들여 그려놓은 것은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 그 맨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모습이었다. 인간의 소유욕을 극한까지 끌어내는 자본주의의 침탈은 식민지 내에 또다른 형태의 내부 식민지를 건설하는 결과로 드러난다. 자본은 노동과 재화를 자신의 식민 영토로 삼는다. 번영로가 잘 보여주듯, 식민지 거점 도시가 된 군산은 내포, 김제만경 평야, 전국에서 몰려온 인력을 내부 식민지에 거느리며 번성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생애가 가장 곤고할 때, 군산이란 도시는 이처럼 험한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막내 순둥이가 마름의 얼굴로, 투기꾼의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던 때제대로 된 축하나 보살핌 없이 서해안 허허벌판에 홀로 제 운명을 건설해야 했던 신도시 군산의 척박한 출발이런 탓인가, 해방이 되었지만 군산의 생애는 여전히 내놓은 자식의 그것처럼 험하게 풀려나갔다. 미군 진주와 함께 군산은 새로운 조차지(?)를 내줘야 했고, ‘아메리카타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어 갔다. 스스로 원한 바 없지만, 식민 지배의 전위가 되어야 했고, 주둔군에게 땅까지 내줘야 했으나, 이제껏 변변찮은 위로나 이해도 받지 못한 것이 20세기 군산이 감당해야 했던 운명이었다. 조선조 내내 금강의 하구의 막내 노릇을 했던 군산은 근대의 출발과 함께 마름이나 곳간지기의 역할을 강요당한 것이다.

 

군산 시내 곳곳에는 이런 역사의 변천을 증거하는 건물이나 스토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근대문화유산이란 명칭이 좀 해괴하긴 하지만, 군산은 20세기 한국 근대사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임에 분명하다. 백제와 후백제의 역사만 역사이겠는가. 치욕스럽다고 해서, 부정한다고 해서 역사가 새로 쓰여지는 것도 아니다. 20대 후반 3년 동안의 군산 생활 경험은, 내 마음 속에 우리 민족사에 대한 애증의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금강하구언

 

현재, 군산은 새만금 간척사업이 완공되었을 때, 다시 한 번 크게 번성할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이다. 20세기 한반도가 당한 외침의 상징과 같은 도시 군산이 이번에는 능동적인 간척 사업을 통해 21세기 동북아의 주요 거점으로 거듭날 기회를 맞이했다는 것긍정적인 의미에서, 난 군산과 새만금을 보면서, 이제 정말 20세기가 아니고 21세기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하지만, 용담댐 건설과 수몰민의 양산, 환경 파괴 논란과 같은 직간접적 희생과 크기를 알 수 없는 대가를 치르고 새만금 간척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잊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이렇게 조국의 산하를 또 고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크게 고치는 일이다. 그 후과(後果)를 간척사업을 주도한 세대가 감당한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으나, 새만금으로 인해 얻게 될 이득과 손실의 대부분이 후대의 몫이라는 점을 생각하면난 아직도 새만금이 마뜩치 않다.

 

금강 휘돌이가 마지막으로 서해와 합류하며 크게 물지는 자리, 군산으로 우리 시대의 희망과 절망이 모두 쏟아져 들어간다. 그것이 어떤 버무려져 어떤 결과를 낳을지

 

나는, 군산이 20세기에 출발한 현재진행형의 도시라는 점과 또 우리 민족은 한반도를 고쳐 쓰고 또 고쳐 쓴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상기하려고 애쓴다. 불안감이 때로 자신을 경계하게 만들지도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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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이현상 비트

선암사에서 송광사 가는 길, 20년

망해사라는 상징 -불안전한 이동이 우리 삶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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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_ 

잘 지내셨어요. 

네 아주 잘요. 

잘 가. 

안녕히 계세요.


안녕. 你好 nǐ hǎo

안녕하세요. nín hǎo

이 둘이 중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인사말입니다.

아무 때고 아무데서나 아무한테나 사용가능합니다.

대답은?

그냥 그대로 따라 하면 됩니다. 이보다 쉬운 회화가 없어요.

 

그 런 데 !!!

이 표현이 의문문으로 바뀌게 되면 그 대답이 달라집니다.

먼저 물어보는 의문문 만드는 방법은?

이젠 이 정도는 껌이지요...

 

? nǐ hǎomȧ? [니 하오 마]

? nín hǎomȧ? [닌 하오 마]

 

잘 지내냐고 물어보고 있어요. 그럼 잘 지낸다고 대답해줘야 합니다.

그 대답은

로 물어봤으니 로 대답해야겠지요.

그리고 좋냐고 물어봤으니 좋다고 대답해야겠구요.

 

A : ? nǐ hǎomȧ? [니 하오 마]

B : 我好wǒ hǎo. [워 하오]

 

A : ? nín hǎomȧ? [닌 하오 마]

B : 我好wǒ hǎo. [워 하오]

 

중국어 인사에 대한 위의 대답은 틀린 답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너 잘지내?’ 라고 물어보면 나 잘 지내라는 수준을 넘어 나 매우 잘 지내라는 매우라는 말을 꼭! 넣어주게 됩니다.

hěn [] 매우라는 말은 정도 부사라 형용사 술어 앞에 오구요.

 

A : ? nǐ hǎomȧ? [니 하오 마]

B : wǒ hěn hǎo. [워 헌 하오]

 

A : ? nín hǎomȧ? [닌 하오 마]

B : wǒ hěn hǎo. [워 헌 하오]

 

 

회화책 펼치면

첫인사인 안녕하세요와 함께 처음 잘 등장하는게 헤어질 때 인사이지요.

중국어에선 헤어질 때 다시 만나자는 말로 인사합니다.

zài [짜이] 다시

jiàn [찌앤] 만나다.

 

짜이 와 찌앤에서 발음요.

앞에선 z j 이네요.

j 는 설면음이라고 하여 혀의 면에서 나오는

z 는 설치음이라고 하여 혀끝과 치아 뒤에서 나오는 입니다.

쌍자음인 로 소리나는 건 성조 영향입니다. 4성이 강하잖아요.

 

그리고 jiana [] 로 날 때와 []로 날 때가 있는데....

ian 에서는 []가 아닌 []로 소리가 난다고 했지요.

 

재방송할 때의 다시 재자이고, 볼 견()’의 간체자입니다.

그래서 다시 보자는 말이지요.

안녕. 잘 가. 잘 있어. 또보자. 꺼져버려... 등 모두 쓰일 수 있는 단어입니다.

(‘꺼져버려는 다른 표현이 있어요... 사실은요. 그냥 헤어질 때 쓰는 말이라고 강조하려고 덧붙여 놓은 것입니다.)

잘가. 再見 zài jiàn [짜이 찌앤]

잘있어. 再見 zài jiàn [짜이 찌앤]

안녕히 가세요. 再見 zài jiàn [짜이 찌앤]

안녕히 가세요. 再見 zài jiàn [짜이 찌앤]

 

헤어질 때의 인사말은 보내는 사람, 떠나는 사람 모두 해당됩니다.

이 또한 아무데서나 언제나 누구에게나 사용 가능합니다.

나중에 다시 안만날 사람에게도 사용가능하고, 전화 대화에서도 사용가능하고요.

 

再見

 

 

 

오늘 배운 표현 총정리 >

 

너 잘 있었니?

전 잘 있어요.

안녕하셨습니까?

네 잘 있어요.

잘가.

잘있어.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

 

너 잘 있었니? 你好嗎? Nǐ hǎo mȧ? [니 하오 마]

전 잘 있어요. 我很好Wǒ hěn hǎo. [워 헌 하오]

안녕하셨습니까? 您好嗎? Nín hǎo mȧ? [닌 하오 마]

네 잘 있어요. 我很好Wǒ hěn hǎo. [워 헌 하오]

잘가. 再見Zài jiàn. [짜이 찌앤]

잘있어. 再見Zài jiàn. [짜이 찌앤]

안녕히 가세요. 再見Zài jiàn. [짜이 찌앤]

안녕히 가세요. 再見Zài jiàn. [짜이 찌앤]  


<동행 역사여행이야기> 

11. 청와대의 생각과 운현궁의 결정



2016년.

여러 이익집단과 수많은 개별 사람이 모인 국가에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고, 최대한의 공리를 생각하며 국가의 좌표를 설정할 때 마지막에는 최종 한사람의 결정이 필요하다. 


2016년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 대한민국의 마지막 결정권자는 누구일까?

흔히 ‘청와대의 생각’ 이니 ‘청와대의 결정’으로 표현되는 

바로 대통령이라는 자리다. 


150년 전 우리나라의 국호는 조선이었다. 

당시 조선에서 최고의사 결정권자는 누구였을까?


당시엔 대통령이 없었고, 왕국체계로써 국왕이 존재했다. 그래서 국왕이 당연 최고결정권자로서 ‘청와대의 생각’처럼 ‘청와대’자리에,  국왕이 살았던 궁궐인 - 창덕궁을 붙여본다.

창덕궁의 생각?

창덕궁의 결정?


그런데...

창덕궁이 아니란다. 

운현궁? 


1863년 조선의 26대왕 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그의 아버지가 정치 전면에 포진한다. 

그 유명한 흥선대원군, 그가 살았던 곳이 바로 운현궁이다. 


‘궁’은 원래 궁궐에 붙은 용어이지만, 왕의 아들이 아니면서 왕이 된 이가 어렸을 적 살았던 집도 ‘ㅇㅇ궁’이라고 부른다.  

흥선대원군이 그의 아들이 왕이 되기 전에 함께 살았던 집이 바로 운현궁이었고, 지금의 <청와대>의 결정에 버금가는 <운현궁>의 결정은 조선을 들었다놨다 할 정도의 힘이 있었다. 


운현궁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결정을 했을까?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는 서구 열강들과 일본 청나라 강국틈에서 정치하는 이들은 자기 배만을 채우고, 외척들은 허수아비 왕을 세워놓고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탐하는 그 때...

운현궁에서는 일단은 바람앞의 등불을 지키려 바람 - 외세를 막았다. 철저히.

또한 외척들의 힘을 없애고, 양반집단의 특권을 줄여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려 했다. 

그리고 왕권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 

권위는 어떻게 하면 세울 수 있을까?

불에 타 270년간 폐허로 남겨진 경복궁을 다시 세운다. 

완공 즈음에 화재, 다시 재건하며 무리수를 많이 뒀다. 

운현궁의 생각과 결정은 10년간 강하게 작용했고, 이후 정권 다툼기에 간헐적으로 등장하지만, 그 소리는 미미했다. 

 

운현궁에 가면 흥선대원군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 몇 십만년 전이니 몇 만년 전이니 몇 천년 전이 아닌, 백오십년 전이니 아직 그의 체취가 남아있을 만도 한다. 

체취는 못찾을런지도 모르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다. 


역사여행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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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10. 백제유적지로서의 익산

[역사여행] 9. 대가야 순장왕릉

[역사여행] 8. 충남 공주와 웅진 씽크빅

[역사여행] 7. 백제 의자왕릉은 어디에 있을까?

[역사여행] 6. 가사문학의 터 - 담양

[역사여행] 5. 숭례문

[역사여행] 4. 청와대

[역사여행] 3. 전주객사

[역사여행] 2. 광주는 왜 빛 광을 썼을까?

[역사여행] 1.동학 그리고 공주 우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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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코치 끝장 여행영어 

13강 비행기타기

A: 어디에 / 유에스 에어 카운터가 있죠?
B: 두 카운터 더 (내려)가세요 / 이쪽으로요
A: (제가)체크인 해도되나요 / 여기서?
C: 물론입니다
A: 창가 좌석으로 / 부탁해요
C: 죄송합니다만 / 모든 창가 좌석들이 / 다 찼습니다

A: Where is the U.S. Air counter?
B: Two counters down this way
A: Can I check in here?
C: Sure
A: A window seat, please
C: Sorry but all the window seats are taken 

A: 웨어리스 더 유에쓰 에어 카운터?
B: 투 카운터쓰 다운 디쓰웨이
A: 캔아이 췍킨 히어?
C: 슈어
A: 에이 윈도우씻 플리즈
C: 쏘뤼 벗 올더 윈도우씻츠 아 테이큰

*유에스 에어 카운터 : U.S. Air counter
*(누군가에 의해서) 취해지다, 차지되다 : be taken

다음 시간에 연습해볼 대화문 우리말로 내어드립니다 영어로 한번 생각해 보셔요

A: 이 비행기는 예정대로 뜨나요?
B: 네, 선생님
A: 어느 게이트로 / 제가 가야하나요?
B: 게이트 9번이요
A: 이 게이트가 뉴욕행이죠?
B: 네, 선생님

*예정대로(계획대로) : on sched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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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코치 여행영어 12강 기차타기(2)

정코치 여행영어 11강 기차 타기

정코치 여행영어 10강 관광버스 타기(2)

정코치 여행영어 9강 관광버스 타기

정코치 여행영어 8강 지하철 타기

정코치 여행영어 7강 버스 타기

정코치 여행영어 6강 택시타기(2)

정코치 여행영어 5강 택시 타기

정코치 여행영어 4강 길 묻기

정코치 여행영어 3강 체크아웃

정코치 여행영어 2강 룸 서비스

정코치 여행영어 1강 호텔 체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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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강)왕초보를 위한 실전회화11(공항에서-입국심사)

  (머물 곳은 어디인가요?)


♣たいざい先は/どちらですか♣

 (たいざいさきはどちらですか)  

 (타이자이사키와/도치라데스까?)



단어Tip)

 ☞たいざい先(타이자이사키)

   체재처/체재하는 곳/머무르는 곳

 ☞~は(와)~은/는

 ☞どちら(도치라)어느 쪽/어느 곳

 ☞~ですか(데스까)~입니까?



이 체재하는 곳에 대해서도 거의 빠지지 

않고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럼 다음의 실전회화에서처럼 대답하면

돼요.



<실전회화>

♣입국심사원 : 

 머물 곳은 어디인가요?

 たいざい先は/どちらですか

 (타이자이사키와/도치라데스까?)


♣나 : 교토호텔이에요.

 京都ホテルです。

 (교-토호테루데스)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도 있어요.

한국어로 말해 보세요.


예문)

①京都ユ-スホステルです。

②お知り合いの家です。


단어Tip)

♣京都ユ-スホステル(교-토유-스호스테루)

  교토유스호스텔

♣お知り合い(おしりあい:오시리아이)

  지인/아는 사람

♣家(いえ:이에)집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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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247강)사역수동표현3-1

일본어 246강)사역수동표현2

일본어 245강)왕초보를 위한 실전회화10(공항에서-입국심사)

일본어 244강)사역수동표현1

일본어 242강)기타 사역표현

일본어 241강)사역표현 (복습)

일본어 240강)왕초보를 위한 실전회화8

일본어 239강)사역표현3-2

일본어 238강)왕초보를 위한 실전회화7 (기내에서)

일본어 237강)사역표현3-1

일본어 236강)왕초보를 위한 실전회화6 (기내에서)

일본어 235강)사역표현2

일본어 234강)왕초보를 위한 실전회화5 (기내에서)

일본어 233강)사역표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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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강)사역수동표현3-1

  (누가 여기에 오게 했어?)


♣誰が/ここに/こさせられた?♣

(다레가/코코니/코사세라레따?) 


오늘은 <3그룹동사> 중 <くる(쿠루)오다>에 

대한 연습이에요.



♣3그룹동사의 공식♣

くる → こさせられる

(쿠루) →(코사레라레루)


♣誰/が/ここ/に/こさせられた?♣

(다레/가/코코/니/코사세라레따?) 



단어Tip)

☞誰(だれ:다레)누구

☞~が(가)~이/가

☞ここ(코꼬)여기

☞~に:(니)에

☞こさせられた(코사레라데따)

  오게 함을 당했다

  기본형:くる→こさせられる(코사세라레루)

  오게 함을 당하다/오게 하다


위의 문장의 끝을 올려 말하면 의문형인

<누가/여기에/오게 했어?>라는 문장이 

돼요.


다른 예문을 가지고 좀 더 연습해 

볼게요.


누가 노래방에 오게 했어?

누가 핸드폰을 사 오게 했어?

누가 라면을 사 오게 했어?


誰が/カラオケに/こさせられた?

(다레가/카라오케니/코사세라레따?) 


誰が/ケイタイを/買って/こさせられた?

(다레가/케-타이오/캇떼/코사세라레따?) 


誰が/ラ-メンを/買って/こさせられた?

(다레가/라-멘오/캇떼/코사세라레따?) 




그럼 다음 문장은 어떻게 말할까요?


예문)

♣誰が/ラ-メンを/買って/こさせられたんですか。

(다레가/라-멘오/캇떼/코사세라렛딴데스까?) 


단어Tip)

♣~んですか(ㄴ데스까?)~입니까?

여기에서 <ん>은 <の>의 회화체로 

우리말로는 <ㄴ/ㅁ/ㅇ>발음이 나며 한 음가를

갖지 못하고 받침발음만 쓰여요.

회화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장이니

익혀두세요. 

특징은 발음하기 편하게 해줘요.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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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246강)사역수동표현2

일본어 245강)왕초보를 위한 실전회화10(공항에서-입국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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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칼라 노예

白奴

bái nú 바이 누

 

미국 노동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의 부유한 노예(원제 : The Future of Success)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고 살기위해 바삐 움직이지만 그 먹고 삶을 위해 노예가 된 것은 아닌지. 그러면서 "생계를 꾸려갈 것인가? 삶을 꾸려갈 것인가?" 라는 화두를 던집니다.

중국어에 흰 노예(白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화이트칼라로 근무하면서 더 좋은 집과 자동차 그리고 더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노예처럼 예속된 직장생활을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흰노예, 푸른노예, 차노예, 카드 노예 등으로 번역해 볼까요?


화제의 300만 모씨의 책 [우리는 누구도 무사히 성장하지 않는다] 미리보기


인간은 아무도 무사히성장하지 않는다


선완규_천년의상상 대표


누가 바람 부는 밤, 이렇게 늦게 달려가는가?

그 아이를 데리고 가는 아버지이네,

팔에 소년을 보듬어 안았지,

어찌 꼭 안았는지 소년은 따뜻해진다.

아들이여, 너는 왜 그렇게 불안하게 네 얼굴을 감추는가?

보세요, 아버지는 마왕을 못 보시나요?

왕관을 쓰고 긴 옷자락을 끌고 있는 마왕을 못 보십니까?

아들이여, 그것은 넓게 퍼져 있는 띠 모양의 안개이구나.

(괴테, 마왕중에서)



소년이 자라 어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소년은 죽었다로 끝나는 괴테의 시 마왕(魔王)에서처럼, 성장은 소년의 상징적 죽음 위에서만 가능하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이 반납의 절차를 통해 소년은 누에고치에서 나비 나오듯한 사람의 어른이 되어 걸어 나온다.

이 변신의 과정이 매끄러울 수 있을까. 인간은 아무도 무사히성장하지 않는다. 무사하게 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 성장기의 바람 속에는 그를 떨게 한 마음속의 두려움과 불안, 그를 슬프게 한 외로움과 좌절, 다른 이들은 모르는 모험과 음모와 사랑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한 소년이 자라 어른이 되기까지는 어떤 힘들이 작용하는 것일까? 현대 생물학은 유전자가 개체 성장의 비밀을 쥐고 있다고 말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 한다. 인간의 성장이 유전정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이미 결정돼 있는 따분한 운명적 전개에 불과하다.

우리가 위인이라 부르는 탁월한 인생을 전개한 개인들의 삶은 인생이 생물학적 운명의 전개가 아니라 그 운명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유전적 결함과의 싸움이 아니었다면 베토벤,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헬렌 켈러는 없었을 것이고 인간 창조성의 보물창고는 한없이 초라해졌을 것이다.

잊지 말자. 인간적 위대성은 어떤 완전성의 결과이기보다는 오히려 결함의 결과라는 사실을. 모든 성장의 서사에는 우리를 매혹하는 비밀이 있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시구를 패러디하여 바람의 비밀이라 이름 붙여본다.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라, 살며 사랑하며 배울 때마다 맞닥뜨리는 애매하고 모호한 말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다. 바람의 비밀은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고 체험하는 모호한 이미지들이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의 논두렁 개구리 울음소리, 동네 바보의 언어, 불타는 노을, 골목의 달빛이 들어 있고, 미친 사람, 귀신 나오는 집, 밤길의 공동묘지, 가슴 설레게 한 최초의 성취, 최초의 거짓말, 최초의 상실과 이별과 상처, 영광과 수치의 순간들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키운 그 비밀스런 바람의 목록을 이룬다. 이 비밀스런 바람의 목록이 불안의 정체이다.



삶을 살아내는 흔적이 바로 불안


나를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비밀의 정체가 불안이라면 더없이 소중하다. 불안의 프레임을 깰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받아들이는 마음 그리고 생각의 넓이가 달라진다. 불행·어두움()은 나를 키우는 바람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많이 가진 것이 밤이다.”(김행숙, 밤에) 그러므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들, 잃어버린 것들, 꿈꿀 수 있는 시간이 밤이다. 그것이 밤의 가능성이고 밤의 힘이다.

돈이 부족한 것? 외모가 뛰어나지 않은 것? 좋은 학벌을 가지지 못한 것? 등 바람의 목록을 만들어갈 때, 나 자신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가 정해놓은 틀을 과감히 벗어날 수 있다. 이때 비로소 그 시선 너머를 상상할 수 있다. 이 순간 필요한 것은 뭘까? 단 하나! 편견과 마주하거나 고정된 틀에 나를 부딪히는 용기밖에 없다.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이 있음을 용기를 내어 지식으로, 경험으로, 체험으로 알아야 한다. 이 시간을 방황이라 부른다. 그래서 모든 방황은 의미 있다. 쳇바퀴 돌 듯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와 마주하는 시간, 다른 사물과 부딪히는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얻는 지식과 체험이 곧 방황이다.

우리는 불안과 방황으로 삶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느낌은 몸으로 마음으로 온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추며 살지, 아니면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만들어갈지. 용기 낸 자만이 새로운 한 발을 내디딜 수 있다.


계속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냐

춤을 출 것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면

나는 네가 춤을 추었으면 좋겠어.’


대체 무엇이 그리 불안할까? 우리 미래에 다가올 확실한 불안은 단 하나밖에 없다. 죽음. 어쩌랴, 모두에게 온다. 이것 외에는 두려워하거나 불안할 것이 없다. 생각을 크게 열자. 누군가 정해놓은 프레임은 나를 작게 만들고 가슴 뛰는 일을 적게 만든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보다는 그 속의 본질을 생각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자. 그러다보면 우리가 그렇게 불행할 일도 가지지 못한 것도 없다. 다른 사람의 삶이 기준이 아닌 나의 마음속 삶이 기준이 되어 앞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철학자가 행복의 다

섯 가지 조건에 대해서 말했다 한다.


하나. 먹고살기에 조금 부족한 재산.

.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약간 떨어지는 외모.

. 자신의 생각보다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 남과 겨루었을 때 한 사람은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 연설할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말솜씨.


 _플라톤 이 글의 앞부분은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도정일 지음)에서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선완규.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였고, 졸업 후 1993년부터 인문학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새길 출판사, 디자인하우스를 거쳐 푸른숲 인문팀장(19972001),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편집 주간(20012012)을 엮임했다. 지금은 인문학출판사를 지향하는 천년의상상 대표 겸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sbi(서울출판예비학교) 책임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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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강)사역수동표현2

  ((어쩔 수 없이)일을 그만두었다)


♣お仕事を/やめさせられた♣

(おしごとを/やめさせられた)

(오시고토오/야메사세라데따) 



오늘은 <2그룹동사>에 대한 연습이에요.



♣2그룹동사의 공식♣

동사의 어미 「る」를 떼어내고 +させられる


♣お仕事/を/やめさせられた♣

(おしごと/を/やめさせられた)

(오시고토/오/야메사세라데따) 


단어Tip)

☞お仕事(おしごと:오시코토)일

☞~を(오)~을/를

☞やめさせられた(야메사세라레따)

  그만둠을 당했다

  기본형:やめさせられる(야메사세라레루)

  그만둠을 당하다


<(어쩔 수 없이)일을 그만둠을 당했다>

즉, 자발적 행위가 아닌 행위자가 누군가 또는

어떤 상황에 의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의미가 돼요. 

그래서 부드럽게 우리말로 의역하면

<(어쩔 수 없이)일을 그만두었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예문을 가지고 좀 더 연습해

볼게요.


(어쩔 수 없이)학교를 그만두었다.

(어쩔 수 없이)회사를 그만두었다.

(어쩔 수 없이)병원을 그만두었다.



がっこうを/やめさせられた。

(각코-오/야메사세라데따) 


かいしゃを/やめさせられた。

(카이샤오/야메사세라데따) 


びょういんを/やめさせられた。

(뵤-잉오/야메사세라데따) 



그럼 다음 문장은 어떻게 말할까요?


예문)

♣彼は/びょうきで/かいしゃを/やめさせられた。

(카레와/뵤-키데/카이샤오/야메사세라레따)


단어Tip)

びょうき(뵤-키)병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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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233강)사역표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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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코치 끝장 여행영어 


12강 기차타기(2)


A: 제가 당신의 표를 좀 볼 수 있을까요?

B: 여기요

어디에 / 식당차가 있죠?

A: 두 칸(차) 뒤에 있습니다

B: 네 감사해요

몇분이죠 / 뉴욕까지?

A: 10분 더 남았습니다


A: May I see your ticket?

B: Here it is

Where is the dining car?

A: Two cars back

B: Thank you 

How many minutes to New York?

A: Ten more minutes 


A: 메이 아이 씨 유어 티켓?

B: 히어 이디스

웨어리스 더 다이닝 카?

A: 투 카스 백

B: 땡큐

하우메니 미닛츠 투 뉴욕?

A: 텐 모어 미닛츠


다음 시간에 연습해볼 대화문 우리말로 내어드립니다 영어로 한번 생각해 보셔요


A: 어디에 / 유에스 에어 카운터가 있죠?

B: 두 카운터 더 (내려)가세요 / 이쪽으로요

A: (제가)체크인 해도되나요 / 여기서?

C: 물론입니다

A: 창가 좌석으로 / 부탁해요

C: 죄송합니다만 / 모든 창가 좌석들이 / 다 찼습니다


*유에스 에어 카운터 : U.S. Air counter

*(누군가에 의해서) 취해지다, 차지되다 : be ta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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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코치 여행영어 9강 관광버스 타기

정코치 여행영어 8강 지하철 타기

정코치 여행영어 7강 버스 타기

정코치 여행영어 6강 택시타기(2)

정코치 여행영어 5강 택시 타기

정코치 여행영어 4강 길 묻기

정코치 여행영어 3강 체크아웃

정코치 여행영어 2강 룸 서비스

정코치 여행영어 1강 호텔 체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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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백제유적지로서의 익산


2015년 7월에 백제 유적지구가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먼저 세계유산은 어느 한 곳만을 지칭할 때도 있지만, 몇 곳이 동일주제로 함께 묶여 지정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왕릉이 모두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고, 고인돌의 경우도 전라도 화순 고창 그리고 강화도 까지 합해서 세계유산이 되었다. 

백제 유적지구면...


삼국시대 신라의 경우 도읍이 천년 내내 경주에 있었으니 경주가 중심이 되지만, 백제는 알려진 도읍이 세 개(서울, 공주, 부여)에 추가로 익산까지 도읍지 가능성으로 언급되는 곳이다. 

2015년 세계유산에 등록된 백제유적은

공주의 무령왕릉과 공산성, 부여의 왕릉원, 부소산성, 정림사지 그리고 익산

까지 포함되었다. 

익산이 백제 세계유산에 포함되었다고?

익산에 뭐가 있지? 익산의 두 곳이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먼저 익산에 ‘왕궁리’라는 마을이 있다. 

거기엔 5층 석탑 - 왕궁리 5층석탑이 있다. 

‘탑이 있으니 절이 있었겠지’ 라며 발굴을 시작했는데, 석탑이 있기 전에 목탑이 있었고, 목탑 주위를 조사했더니 탑과 좌우로 거대한 건물터가 발견되고, 후원 흔적까지 발견되었다.

궁궐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규모다. 

‘왕궁’이었다면 누가 있었을까?

고조선 준왕이 남하해 마한세력을 형성한다는 설, 고구려 유민이 터전을 잡았다는 설 그리고 가장 설득력을 갖고 있는 백제 무왕과의 연계설이 있다. 


그리고 또하나 익산엔 미륵사지가 있다. 

미륵사지는 <삼국유사>에 그 시작이 전해진다. 

그 유명한 익산의 무왕과 선화공주이야기로.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보수하는 과정에 석탑을 세운 사정을 적은 기록물이 발견되었다. 안타깝게도 선화공주 이야기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천사백년전 백제왕국의 왕비가 왕의 평안함과 왕국의 안녕을 비는 내용으로 탑을 쌓고 절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왕궁리는 여전히 발굴중이고, 미륵사지는 터와 쓰러져가는 탑만 남아 있어 역시나 연구중인 곳이다. 아직 발굴중이고 연구중인 이곳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이유는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어떻게 정착되었는가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중국 남방지방의 궁궐 정원 모습이 한반도와 일본에 어떻게 전파되는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데 의의가 있다고 한다. 

문화의 흐름과 전파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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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의 지나간 시간에 대한 명언

Waste no fresh tears over old griefs.

오래된 슬픔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

-Euripides-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의 한 사람으로 사티로스극 《키클로프스》를 비롯한 19편의 작품이 전해진다. 아이러니를 내포한 합리적인 해석과 새로운 극적 수법으로 그리스 비극에 큰 변모를 가져왔다. 주로 인간의 정념(情念)의 가공할 작용을 주제로 하였고 특히 여성심리 묘사에 뛰어났다.

◈오늘의 긍정 표현

over 넘어지게, 쓰러지게, (넘어져서) 떨어지게,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뒤집어
, (거리・툭 트인 공간을) 너머
waste (돈・시간 등을 필요 이상으로 들여) 낭비하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엉뚱한 곳에) 헛되이 주다.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낭비하다
old 나이가 …인, 늙은, 나이 많은, 노인들
fresh 신선한, 갓 딴, 새로 생긴; (기억 등이) 생생한, (무엇에 추가・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grief (특히 누구의 죽음으로 인한) 비탄, 큰 슬픔(을 주는 것), 고민







◈발타즈르의 존중 명언

Respect yourself if you would have others respect you.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존중하라. 

-Baltasar Gracian-

발타자르 그라시안(1601~1658)은 1601년 스페인 아라곤 지방의 칼라타유드 인근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하층 귀족 가문 출신의 의사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 그의 유년기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그의 다른 형제들이 훗날 신부가 되었고 발타사르 그라시안 자신도 신부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그가 매우 종교적인 분위기 아래에서 성장했을 것임은 충분히 추정 가능하다. 그라시안은 18세 되던 해인 1619년 예수회 교단에서 사제 수업을 받기 시작했으며, 1623년부터는 사라고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627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칼라타유드에 돌아와 이곳 학교에서 인문학과 문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일부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 시기의 교육 경험이 훗날 그가 수사학에 관한 저서를 내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긍정 표현

respect [명사] ~ (for sb/sth) 존경(심), 
would [조동사] 누가 한 말・생각을 전달하는 문장에서 will의 과거형으로 씀
have [동사] OWN/HOLD | (진행형으로는 쓰이지 않음) (have got) 가지다, 있다, 소유하다
if you would (《동의》) 원하면, 하고 싶으면
other [형용사, 대명사] (그 밖의) 다른; 다른 사람[것] 






◈틸리히의 사랑 명언

The first duty of love is to listen.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경청이다.

-Paul Tillich-

(틸리히 Paul Tillich 독일1886년 ~ 1965년 신학자, 철학자)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ㆍ철학자. 베를린 대학ㆍ튀빙겐 대학ㆍ할렌 대학 등에서 신학ㆍ철학을 공부하고, 제1차 대전 당시 종군 목사로 참전하였다. 전후에 베를린 대학 강사, 마르부르크 대학ㆍ드레스덴 대학ㆍ라이프치히 대학 등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동안 종교적 사회주의의 이론적 지도자로서 운동을 추진하였는데, 마침내 히틀러에게 추방당하여 1933년 미국에 망명, 뉴역의 유니언 신학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정년 퇴직 후 하버드 대학에 초빙되었다. 그의 사상은 M. 켈러 및 F.W.J. 셀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실존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여 독특한 존재론적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신학과 철학을 물음과 대답의 관계로 포착하여, 상황 속에 포함되는 물음을 존재론적으로 분석하는 동시에 그 대답을 크리스트 교의 여러 상징에서 찾아내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오늘의 긍정 표현

first (the first) 첫, 첫 (번)째의; 첫째, 첫째의, 우선, 맨 먼저
duty of love 사랑의 의무
listen (귀 기울여) 듣다, 귀 기울이다, (남의 충고 등을) 듣다, (내 말을) 들어 봐
to (이동 방향을 나타내어) …로, …쪽으로, (위치를 나타내어) (~의) ~ 쪽에, (도달점을 나타내어) …까지






◈휴 엘리어트의 우정 명언

All people want is someone to listen.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다.

-Hugh Elliott-

◈오늘의 긍정 표현

listen (귀 기울여) 듣다, 귀 기울이다, (남의 충고 등을) 듣다, (내 말을) 들어 봐
want 원하다, 바라다, ~하고 싶어하다, 필요하다, ~할 필요가 있다, ~해야 하다
to (이동 방향을 나타내어) ~로, ~쪽으로,(위치를 나타내어) (~의) ~ 쪽에, (도달점을 나타내어) ~까지
all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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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존슨의 희망 명언

Hope is necessary in every condition.

희망은 언제 어디서든 필요하다.

-Samuel Johnson-

영국 시인 겸 평론가. 후에 문학상 업적으로 박사 학위가 추증되어 ‘존슨 박사’라 불렸다. 17세기 이후의 영국 시인 52명의 전기와 작품론을 정리한 10권의 《영국시인전》은 만년의 대사업으로 특히 유명하다.《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000년 동안 최고의 업적을 남긴 인물 또는 작품 선정에서 그를 최고의 저자로 선정했다.

◈오늘의 긍정표현


necessary 필요한, 필연적인, 불가피한
condition 상태, (건강) 상태, (치유가 안 되는 만성) 질환
hope 바라다, 희망하다, 희망, 기대, 바라는 것, 희망 (사항)
every (단수 명사와 함께 쓰여) 모든, 가능한 모든; 충분한



◈에픽테토스의 교육 명언

Only the educated are free. 

오직 배운 자만이 자유롭다.

-Epictetus-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자이다. 노예 출신이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후기 스토아학파의 대가가 되었다. 인간의 내적 자유에 대한 고찰로 스토아 철학의 윤리학을 발전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오늘의 긍정 표현

only 유일한, 오직 ~만의, (가장 좋은) 단 하나의, (사람・사물에 대해 써서) 오직, (단지/오직) ~만
free 자유로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죄수나 노예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be (are) 있다, 존재하다, (어디에) 있다, (행사 등이 언제・어디에서) 있다
educated ~한 교육을 받은, 많이 배운, 학식 있는






◈조지 번트의 나이 명언

You can't help getting older, but you don't have to get old. 

늙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늙은이로 살아야할 필요는 없다. 

-George Burns- 

조지 번스 (1896년 1월 20일 - 1996 3월 9일)는 미국의 코미디언, 배우, 가수, 작가였다.

◈오늘의 긍정 표현

have to (의무’를 나타내어) ~해야 한다(부정문에서는 ~하지 않아도 되다) (충고・권고를 나타내어) ~해야 한다 (‘확신'을 나타내어) 틀림없이 …일 것이다
get old 노년으로 접어들다
do not have to ~할 필요가 없다



◈토마스 베일리 알드리치의 나이 명언

To keep the heart unwrinkled, to be hopeful, kindly, cheerful, reverent- that is to triumph over old age. 

마음의 주름살을 방지하려면 희망차게, 활기차게, 경건하게 살면 된다. 이것이야말로 늙지 않는 비결이다.

-Thomas Bailey Aldrich-

토마스 베일리 알드리치 (1836 ~ 1907)는 미국의 작가이자 시인은 배드 보이 (1870)의 이야기를 썼다.
일정 기간 동안 뉴 올리언스에 거주 후 그는 대학을 입력 할 포츠머스의 고향으로 다시 보낼 때 배드 보이 (1870)의 이야기에 "톰 베일리는"알드리치의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합니다. 그는 남북 전쟁 특파원으로 일한에서 신선한 포츠머스에서 여름 휴가 동안 쓴, 그의 부친의 삶과 자신의 곧 아버지에 반영. 전달되는 오늘의 인기 도덕적 톤 많은 작품에서 벗어나고, 그것은 모든 미국 소년 시절의 반 자전적 회고록과 사실적인 묘사이다.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를 작성하는 데 영감되었다고합니다.

◈오늘의 긍정 표현

hopeful 희망에 찬, 기대하는, 희망적인, 희망을 주는
cheerful 발랄한, 쾌활한, 생기를 주는, 쾌적한
kind (kindly) 종류, 유형, 친절한, 다정한, 정중한 요청・명령을 할 때 씀
that is (to say) 즉[말하자면]
unwrinkled 주름을 편.
triumph over ~을 이겨내다.




◈에밀리 디킨슨의 나이 명언

Old age comes on suddenly, and not gradually as is thought.

노년은 갑자기 찾아 온다. 생각처럼 차근차근 다가오지 않는다. 

-Emily Dickinson- 

에밀리 디킨슨(Emily Elizabeth Dickinson, 1830.12.10 ~ 1886.5.15)
미국 시인. 자연과 사랑 외에도 청교도주의를 배경으로 한 죽음과 영원 등의 주제를 많이 다루었다. 같은 시대의 영국의 여류시인 C.C.로제티와 유사한 점도 있으나, 디킨슨의 시가 훨씬 더 경질적(硬質的)인 요소를 지니고 있어, 19세기 낭만파의 시풍보다도 17세기의 메타피지컬 포엣(metaphysical poet, 形而上派詩人)의 시풍에 가까웠다.

◈오늘의 긍정 표현

old age 노령; 노년, 만년
come on 등장하다
as is (어떤 조건·상태이건) 있는 그대로
gradually [부사] 서서히
suddenly [부사] 갑자기, 급작스럽게, 불현듯
thought THINK의 과거·과거분사








◈헬렌 헤이즈의 나이 명언

Age is not important unless you're a cheese.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니다. 당신은 치즈가 아니기 때문이다.

-Helen Hayes- 

*헬렌 헤이즈 Helen Hayes 는(1900년 10월 10일~1993년 3월 17일 / 미국,워싱턴DC 워싱턴)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브로드웨이 관객에게 헬렌 헤이스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여배우였고 20세기 내내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을 듯한 존재로서 남아 있었다. 그녀의 죽음은 밥 호프의 죽음만큼이나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었다. 그녀는 배우 지망생이었던 모친에 의해 시험 삼아 오디션에 내보내졌던 5세 때부터 85세까지 연기를 계속했다.

◈오늘의 긍정 표현
age 나이, 연령, 수명
not [부사] ~아니다[않다] (be, do, have 동사나 can, must 같은 조동사를 부정할 때 씀. 흔히 n't으로 줄여 씀)
unless ~하지 않는 한, ~이 아닌 한, ~한 경우 외에는
important 중요한, 중요한, 영향력이 큰, 권위 있는







◈마이클 J. 폭스의 가족 명언

Family is not an important thing. It's everything.

가족은 그저 중요한 것만이 아니다. 가족은 모든 것이다. 

-Michael J. Fox- 

*마이클 J. 폭스(1961년 6월 9일 ~ )는 캐나다 출신의 배우이다.
1991년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는데, 이 사실을 대중에 알린 것은 1999년이었다. 증세가 악화되자 2000년 배우 생활을 은퇴하였으며, 그는 파킨슨병의 치료법을 연구하기 위한 활동가로 지내며 봉사활동과 모금활동을 하였다. 이는 곧 마이클 J. 폭스 재단(The Michael J. Fox Foundation)을 설립하기까지 하였고,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2010년 3월 5일 그의 활동을 높게 평가하여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하였다.

2000년 이후부터 그는 영화에서 성우로 활동하고 있는데, 《Stuart Little》,《Atlantis : The Lost Empire》이 그가 참여한 주요 작품이다. 또한 텔레비전 드라마에 우정 출연으로 나오기도 하였고,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2011년 5월 27일 공로를 인정 받아 캐나다 훈장 오피서 등급을 받았다.

◈오늘의 긍정 표현
is not 있지 않다
important 중요한, 중요한, 영향력이 큰, 권위 있는
everything 모든 것, 모두, (현재의 일반적인 상황・생활을 나타내는) 모든 것,전부, 가장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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